충남 예산군 대흥면 주민들이 손수 기른 농산물을 의좋은 형제 장터에 갖고 나와 팔고 있다. 이 장터는 인정과 정보를 나누면서 ‘의좋은 이웃’을 만드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대흥슬로시티협의회 제공 |
충남 예산군 대흥면 주민들이 손수 기른 농산물을 의좋은 형제 장터에 갖고 나와 팔고 있다. 이 장터는 인정과 정보를 나누면서 ‘의좋은 이웃’을 만드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대흥슬로시티협의회 제공 |
‘의좋은 형제’가 각자의 아내에게 한 말을 교과서에 그대로 실었다면 이랬을 법하다. 휘영청 달 밝은 가을 밤 서로의 낟가리에 몰래 볏단을 얹어주다 만나 얼싸안고 울었다는 이 전래민담이 고려 말~조선 초 이성만·이순 형제의 실제 이야기로 밝혀진 충남 예산군 대흥면 동서리에서는 요즘 면 주민을 ‘의좋은 이웃’으로 묶어주는 장터가 열린다.
지난 14일 열린 장터에는 제철을 맞은 감자, 양파, 콩 등이 나왔다. 된장과 고추장도 보였다. 장터 한쪽에서는 빈대떡에 막걸리를 팔았다. 주민뿐 아니라 서울과 대전 등에서 온 외지인 수백명이 하루종일 북적거렸다.
집 주변에 심어 딴 매실을 갖고 장터에 나왔다는 김선향(62)씨는 “장터에 나오믄 이우지 동네 소식을 들을 수 있어 좋쥬. 인심도 좋구 물건도 좋으닝께 농산물을 판 사람의 즌화번호를 적어가는 외지인도 참 많유”라고 말했다. 이어 “그러구 팔다남은 것은 집이루 가져가지 않구, 열무 한 단이라도 장 찌넌디 늫먹으라고 이웆덜헌티 거져 주니께 장터가 올마나 훈훈헌지 물류”라며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장터는 정이 넘치고 풍성하다. 면 주민이 죄다 모여 음식을 나누면서 얘기꽃을 피운다. 면내 이장과 부녀회장에 면장까지 총 출동한다. 다달이 면 주민의 ‘큰 잔치’가 열리는 셈이다. 도시로 나가 살던 아들·딸들도 내려와 마을 어른들과 어울리며 고향의 정을 만끽한다.
대흥면은 2009년 9월 ‘슬로시티 마을’로 인증을 받았다. 마을 주민을 중심으로 ‘대흥슬로시티협의회’가 만들어졌고, 자연 소멸된 이 장터를 40년 만에 부활시켰다. “이웃덜을 만나 놀으니 심심허지 않구, 장사 잘허넌 사람은 하루 70만원까장 벌기두 하니께 주민덜은 주말마두 열자구덜 허넌디, 천막 치고 놀이마당 맹그는 게 원체 심들어서 엄두를 뭇 내구 있슈. 그렇지먼 허기는 허야 되겄구 일손은 부족허구 그리서 고민이 많쥬.” 대흥슬로시티를 이끌고 있는 박효신 사무국장의 말이다.
예산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사투리풀이(‘예산말 사전’ 등 펴낸 충청도말 연구자 이명재 시인 도움)
-장개: 장가
-월매: 얼마
-벳토매: 볏단
-점: 좀
-성님: 형님
-이우지: 이웃
-늫먹으라고: 넣어먹으라고
-올마나: 얼마나
-물류: 몰라요
-~까장: 까지
-~마두: 마다
-맹그는: 만드는
-원체: 워낙
-그리서: 그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