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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 시해’ 길 터준 이두황 행적 단죄비에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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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묘지 인근에 2m 비석 설치

민족문제연구소 전북지부는 지난해 8월 13일 전주시 중노송동 기린봉 초입에 ‘친일파 이두황 단죄비’를 설치했다고 1일 밝혔다. 이두황이 죽은 지 100년 만에 그의 묘지 옆에 2m가 넘는 단죄비를 세우고 친일 행적을 낱낱이 기록한 것이다.

그는 1895년 10월 8일 새벽 훈련대 제1대대장으로서 명성황후 시해 사건을 이끌었다. 조선공사 미우라와 일본 자객이 ‘조선의 국모’의 목에 칼을 들이대는 데 길을 열어준 인물이다. 항일 의병 투쟁 시기였던 1908년에는 호남 지역 의병들의 초토화에 가담했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에는 일제의 토지수탈을 돕는 등 식민지 정책에도 앞장섰다. 1910년부터 1916년 사망할 때까지 전북 도정관(현 도지사)을 지냈다. 서울 태생인 그의 묘가 전주에 세워진 이유다. 그의 친일에 감동한 일제는 1912년 경술국치 기념장, 일본적십자사 조선본부에서 유공장, 다이쇼 천황 즉위기념 대례기념장을 주었다.

이두황은 죽어서도 친일의 길을 갔다. 단죄비에서 365m 떨어진 이두황의 묘의 제단 등은 일본식이다. 묘비석 이름은 초대 조선 총독이었던 데라우치가, 비문은 친일파 김윤식과 정병조가 작성했다고 한다. 그 일대 땅 1만 2000여 평은 여전히 이두황 후손의 소유다.

김재호 민족문제연구소 전북지부장은 “이두황은 우리 민족에게 씻을 수 없는 아픔과 모멸감을 안겨준 인물”이라며 “이명박 정부 때 친일 행위자 재산 환수위원회가 해체돼 친일 후손의 재산을 환수할 방법이 사라진 만큼 차기 정부에서 이 위원회를 부활해 부정축재한 친일파의 재산을 환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2017-03-02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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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제공 : 정책브리핑 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