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위에서 먹고 일하고 놀고 자고… 1000만

통계청 발표 ‘2020 고령자 통계’ 분석

20년 뭉갠 부산롯데타워, 또 지연되나… 지역사회

공사 관계자들 “한밤 파쇄석 500t 운반” 스카이칠십이 “금시초문, 말도 안 된다” 인천공항공사 “사실 확인 땐 법적 조치”

휠체어 끌어도, 무릎 아파도… 누구나 즐거운 ‘2

통계청 발표 ‘2020 고령자 통계’ 분석

알뜰교통카드 쓰던 경기도민 59% ‘경기패스’ 전

평균 27.9년… 부처별 최대 13년 11개월차 행복도시건설청 17년 4개월로 가장 빨라 세종시 평균 17.6년… 전남은 28.3년 걸려

[역사속 공무원] ‘K9’ 자주포 시조는 ‘문종화차’

폰트 확대 폰트 축소 프린트하기
자동차 이름으로 유명한 ‘K9’은 신개념 포병 무기이기도 하다. 터키, 폴란드, 핀란드에도 수출할 정도로 세계 최강인 자주 곡사포 ‘K9’을 우리 스스로 개발한 것은 15세기에 이미 세계 최초로 화차를 만든 조상의 유전자 덕이란 생각이다.

조선시대에는 모두 5종의 화차가 만들어졌는데, 그중 문종이 직접 설계·감독해 완성한 ‘문종화차’가 으뜸으로 꼽힌다. 1451년 만들어진 문종화차는 차 위에 거치대를 설치하고, 중신기전(中神機箭) 100개 또는 사전총통(四箭銃筒, 4발을 동시에 쏠 수 있는 총) 50개를 장착하여 한 번에 200발을 발사할 수 있었다. 차체는 길이 230㎝, 너비 74㎝로, 지름 87㎝의 바퀴가 2개 달렸는데, 화차의 위력은 적군 100명과 맞먹어 당시로서는 가공할 만한 무기였다. 평탄한 곳은 두 사람이, 진흙 도랑이나 조금 경사진 곳은 두 사람이 끌고 한 사람이 뒤에서 밀면 쉽게 움직일 수 있는데 이는 모두 문종이 직접 지시하고 가르친 것이다.

제5대 임금인 문종은 2년 3개월의 짧은 재위기간과 병약함 때문에 존재감이 낮지만, 무기와 군사 분야에서는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문종은 화차의 활용에 대해 “화차는 무기인 만큼 평상시에는 쓸모없는 기구이다. 사용하지 않으면 망가지게 마련이니 각사(各司, 서울 소재 관청을 통틀어 이르는 말)에 나누어 운반용으로 사용하고, 사변이 발생하면 즉시 화포를 거치하여 사용하라”고 상세하게 밝혔다. 문종화차는 민·군 겸용이었다.

문종화차는 발표 한 달여 전에 운용시험평가도 가졌다. 문종은 모화관에서 700명의 병사가 벌인 전투훈련을 참관한 뒤 화차와 재래식 무기인 편전의 위력시험을 했다. 80보 앞에 갑옷과 방패로 무장한 무예연습용 인형을 세우고 화차와 편전을 쏘았는데, 화차만 관통했다. 문종은 “기계는 정밀하고 자세했으며, 무사들은 화차를 능숙하게 다루었다”며 흡족해했다.

자주포나 전차, 장갑차는 외형이 비슷한데 문종화차는 자주포인 K9에 가깝다.


최중기 명예기자(국가기록원 홍보팀장)

우리나라 최초의 화차는 최무선의 뒤를 이어 아들 최해산이 1409년 완성한 것인데, 아쉽게도 일찍 단종되는 바람에 제원이 전해지지 않는다. 두 번째인 문종화차는 비교적 온전하게 설계도가 전해져 몇 차례의 개량을 거쳐 19세기 초까지 실전에 사용되었다.

문종은 이 화차를 끊임없이 개량하고 확대 배치에 힘썼다. 임금이 곡산, 수안, 황주 등의 고을에 화차 20대씩을 제작·배치할 것을 지시하자 의정부가 반대했다. “평양은 변방이 아니어서 화차를 배치하지 않기로 했는데, 곡산 등과 같은 내륙지방까지 필요하겠습니까. 도적들이 내륙까지 이른다면 그때 만들어도 늦지 않습니다.” 이에 실망한 임금은 “내가 직접 창작한 것인데, 어찌 이럴 수 있나. 대신들이 화차에 대해 너무 모르는 것 같다”며 푸념했다. 하지만 문종은 병조에 화차를 추가 제작하도록 지시해 1451년 한 해 동안 전국에 700대 이상이 배치된 것으로 전해진다.

화차는 임진왜란 3대 대첩 중의 하나인 행주대첩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593년 2월 12일 새벽 6시 3만명의 왜군이 공격을 시작했다. 이에 맞서는 조선군은 정규군 2800여명, 승병을 포함한 의병이 6000여명으로 누가 보아도 중과부적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왜군의 완패였다. 6000여 정의 조총으로 무장한 왜군의 공세를 대파할 수 있었던 것은 한 번에 100~200발을 퍼붓는 40대의 화차가 있었기 때문이다. 행주대첩의 주인공 화차는 조선의 네 번째 모델로 2세대 모델인 문종화차를 개량한 것이다.

최중기 명예기자(국가기록원 홍보팀장)
2017-04-10 35면
페이스북 트위터 밴드 블로그

자료 제공 : 정책브리핑 korea.kr

자료 제공 : 정책브리핑 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