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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공무원] 세종마저… ‘큰 불’ 뒤 신하 탓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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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독립 소방기관인 금화도감이 설치된 배경에는 조선시대 최악의 화재 사고인 1426년 한성부 대화재가 있다. ‘세종실록’ 31권 2월 15일 세 번째 기사는 이날 화재에 대한 보고다. 점심때쯤 서북풍이 강하게 부는 가운데 한성부의 남쪽에 사는 인순부의 종 장룡의 집에서 불이나 경시서(京市署·시전 관리기관) 북쪽의 행랑 106간, 중부의 인가 1630호, 남부의 350호, 동부의 190호가 연소됐으며 남자 9명, 여자 23명이 사망했다는 것이다. 다음날에도 잔불에 의한 것으로 보이는 화재가 발생해 인가 200여호가 연소됐다. 이틀간의 화재로 총 2400여호가 불탔는데, 이는 한성부 전체 가구의 17%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화재가 있던 날 임금은 강무(講武·임금이 참관하는 군사훈련 겸 수렵대회)를 떠나 강원도 횡성에 머물고 있었다. 궁궐에 남아 있던 사람 중 최고 웃전이던 중전은 “돈과 식량이 들어 있는 창고는 포기하더라도 종묘와 창덕궁은 온 힘을 다하여 지키라”고 명했다. 중전은 이날 저녁 화재 진압을 보고받고 “오늘의 재변은 말로 다할 수 없으나, 종묘를 보전한 건 다행한 일”이라며 녹사 고상충에게 밤을 달려 임금에게 보고토록 했다. 보고를 받은 임금은 몹시 짜증을 냈다. “이번 강무는 오고 싶지 않았는데 경들이 굳이 가자 했고, 어제도 바람이 심하고 몸이 불편하여 돌아가자고 했으나 경들이 반대해… 이런 재변이 있는 줄도 모르고 깊이 후회한다. 내일 궁으로 돌아갈 터이니 준비하라.” 세종답지 않은 책임 전가와 부실한 조치였다.

화재 발생 4일 만인 19일 오후 3시쯤 환궁한 임금의 첫 번째 조치는 피해 상황 파악과 구제책이었다. “의정부는 화재를 당한 집 수와 인구를 조사하고 어린이와 장년을 나누어 구제하여 굶주리거나 곤란을 당하는 사람이 없게 하라. 병조는 화재로 집을 잃은 사람들이 집을 지을 수 있도록 죽은 소나무를 베어 주어라.”

세종은 왜 병조에게 하필이면 죽은 소나무를 베어 주라고 했을까. 세종이 과학적 업적이 가장 큰 임금이었음을 감안한다면, 빠른 시일 내에 튼튼한 집을 지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과학적 사고의 결과물로 짐작된다. 소나무는 가장 좋은 국산 목재 중에 하나지만, 건조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 생나무를 사용하면 얼마 못 가 뒤틀리고 갈라지기 마련이다. 이 때문에 많은 병력을 동원해서라도 이미 잘 건조된 죽은 소나무를 하사해 복구 기간을 단축하고, 소나무도 보호하려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추정해 볼 만한 근거나 기록은 없지만, 백성을 지극히 아끼고 보살폈던 세종의 평소 성품으로 보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로 보인다.

요즘도 한식날은 성묘객들이 버린 담뱃불로 곳곳에서 산불이 발생해 큰 피해를 입고 있는데, 조선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 ‘세종실록’ 51권 1431년 3월 27일자는 상정소(詳定所·법규 제정이나 정책 수립을 위해 설치한 임시기구) 보고다. “한식날부터 3일간은 아침 일찍 밥을 짓고 그 외의 시간에는 불을 사용하지 말도록 전교하였으나, 이는 선량한 백성들을 범법자로 만들 수 있다. 실화(失火)는 따로 때가 있는 것이 아니고, 화기 사용 금지를 법으로 정한다고 백성들이 이를 지킬 수 있겠는가. 이 법은 전과자를 양산할 뿐이니, 법으로 정하기보다 금화도감이 순찰을 강화하여 화기 사용을 금지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다.


최중기 명예기자(국가기록원 홍보팀장)

조선시대 소방제도와 기구는 요즘 기준으로도 체계적이고 과학적이다. 화재가 빈번하지 않을 때는 성곽 보수공사나 하천정비 같은 막일에 동원되고, 번번이 정원과 예산이 깎이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끊임없이 진화했다.

최중기 명예기자(국가기록원 홍보팀장)
2017-05-08 3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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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제공 : 정책브리핑 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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