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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블릭 詩IN] 아내의 장독대

입력 : 2017-09-10 17:18 | 수정 : 2017-09-10 19:48 폰트 확대 폰트 축소 프린트하기

손 없는 날 아내가 장을 담근다



눈가에 잔주름이 그윽한 아내는

이제 갓 시집온 새색시처럼

맵시나는 생활한복을 입고

익숙해진 손놀림으로

메주를 건져 낸다

한 뭉치 지푸라기 솔로 팍팍

문질러 닦아내어

쨍쨍한 햇볕에 메주를 말려서

정성 가득히 장을 담그는 아내

하늘 한 자락 잘 발려

새끼손가락 휘저어 입맛을

쩝쩝 다시며

꼼꼼하게 연신 장맛을 보고

햇발이 반짝반짝 빛이 나도록

장독 항아리를 문질러댄다

우리가 함께하는 동안

행여 미쳐 내가 헤아리지 못하는 사이에

답답한 가슴을 쿵쿵 쳐대며

햇볕에 보타져 장졸아 줄 듯

해마다 아픔으로 되돌아올 기억을

쟁여두고

아내의 마음도 저렇게 타닥타닥

보타지는 것일까

나는 온기 가득한 장독대 항아리를

무심코 들여다보다가

훅, 순간 뜨거운 숨결이 내 얼굴에 덮치고

문득 뭉글뭉글한 함박꽃이 환하게 피어

복이라곤 일복밖에 없다던

어머니가 비치고

늘 짭조름한 인생 술에 절여 막 살다가

강물처럼 떠내려간 아버지가 밀려오고

옹알이가 한창인 큰 손주 놈

햇살이 시들 때까지 첨벙첨벙

물장구치며 놀다가고

쩌-억 쩌-억 갈라진 메주덩이 사이사이로

푸름 한 곰팡이가 뭉게뭉게 피어오르며

고스란히 삶의 깊은 손맛을 내는

아내의 장독대

이따금 어디선가 톡, 톡, 톡

꽃망울이 터지는 소리

장독대에선 보글보글 장 익는 소리가 나고

어느덧 펑퍼짐한 동네 아줌마 차림이

물씬 묻어나는 아내는

여직 아물지 않는 상처 하나 묻어두고

벅차게 차아 오르는 장처럼

아내의 삶도 저리 익어가는 것일까

오늘따라 마음속에 응어리처럼

고여 있는 신열이

저하늘에도 푸르게푸르게 번지는 것일까

김헌기 장흥교도소 교위

김헌기 (장흥교도소 교위)

20회 공무원 문예대전 동상 수상작

2017-09-11 3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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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제공 : 정책브리핑 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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