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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김영배 서울 성북구청장 ‘올레길 대담’

지난 6일, 겨울을 홀로 비켜 간 듯한 제주 올레 7코스에는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다. 바다의 물결은 겹겹이 빛을 발하고 누렇고 흰 억새는 하늘과 땅의 경계를 그렸다. 제주 올레길은 지난해 9월, 10주년을 맞았다. 1997년 제주 시흥초등학교에서 광치기해변으로 이어지는 첫 코스가 개장한 이래로 지난 10년간 모두 26개 코스(425㎞)가 생겨났고 누적 탐방객이 770만명에 이른다.

올레길을 탄생시켜 ‘길을 잇는 여자’라고 불리는 서명숙(60) 사단법인 제주올레 이사장과 ‘걸어서 성북 한 바퀴’라는 이름으로 서울 성북구의 곳곳을 걸으며 골목길 복원에 힘쓰는 김영배(50) 성북구청장이 길(올레) 위에서 만났다. 두 사람은 서귀포시 대륜동 속골천에서 법환포구까지 놀멍 쉬멍 걸으멍(‘놀며 쉬며 걸으며’의 제주도 방언) 2시간여 동안 기자의 주선으로 대담을 진행했다.

서명숙(왼쪽) 사단법인 제주올레 이사장과 김영배 서울 성북구청장

▶한 사람은 올레길을 개척하고 한 사람은 골목길 살리기에 힘을 쓴다. ‘길에 대한 애착’이 두 사람의 공통점인 거 같다.

-김 구청장 처음 구청장이 되고 나서 내가 성북구를 잘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성북구의 경계 지역이 어디고 인접한 강북구, 도봉구와 다른 점은 무엇인지, 성북에 사는 사람들의 표정은 어떤지, 그 사람들의 고민은 뭔지 등을 고민했다. 적어도 성북 지역의 땅은 다 밟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은 사람이 살아가는 통로고 거기에 생명이 있고 저마다 이야기가 있다.

-서 이사장 19세에 제주에서 서울로 온 다음에 50세까지 살았다. 딱 50세가 되는 해에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800㎞)을 걸었다. 처음에는 작은 마을, 목장, 구릉. 성당을 보면서 감탄을 하다가 20일쯤 지나니까 감동이 무뎌지면서 제주도 생각이 많이 났다. 서울에서는 오히려 너무 바삐 살다 보니까 제주도 생각을 못 했다. 산티아고 자연에 노출되다 보니 절로 ‘원자연’(原自然)이 생각이 난 것이다. 어릴 적 친구랑 소풍 갔던 길. 단물 나는 풀을 뜯어 먹었던 기억, 엄마와 외갓집 제사에 갔던 길 등 어릴 때 봤던 단편적이지만 인상적인 풍경들이 다시 떠오르면서 ‘아, 제주도의 그 길들이 남아 있을까. 많은 길이 사라졌겠지만, 또 남아 있는 것은 찾아서 잇고 화살표 같은 것으로 표시를 해 주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지난 6일 서명숙(왼쪽) 제주올레 이사장과 김영배 성북구청장이 제주 서귀포시 대륜동 속골천에서 법환포구까지 걷는 도중 몽돌해변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성북구 제공

▶두 사람이 지향하는 길은 도심 속 대로(大路)와 다른 것 같다.

-김 구청장 우리 구에서 ‘골목길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왜 골목길이냐’는 질문이 꽤 있었다. 골목길에는 일종의 흔적이 남아 있다. 상당수 사람은 내가 원하고 해 보고 싶은 것은 바깥에 있다고 치부하고 지금 내가 발 디디고 있는 곳을 벗어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깨닫게 된다. 내 삶이라는 게 바로 여기 있다는 것을. 그런 흔적이 묻어 있는 골목을 희망의 장소로 바꿀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도시 속에서 얼굴 없는 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잃어버린 얼굴과 삶을 찾아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서 이사장 골목길과 달리 도심의 삐까뻔쩍한 대로는 이쪽과 저쪽의 거리가 너무 넓다. 구색으로 만든 산책로는 이용하는 사람이 별로 없고 다들 피트니스센터에 가서 운동한다. 누구도 거기서 산책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 거다. 그 길은 차가 주인이다. 굉장히 편리해 보이지만, 사람은 머무르기 힘들다.

-김 구청장 좋은 도시는 다양한 분기점이 있다. 다양한 접근이 가능하고 그게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마치 대로의 일방통행 같다. 자기 선택권 없이 얼굴 없는 사람들이 짐짝 취급당하면서 우르르 같은 곳으로 가고 있다.

-서 이사장 길 위에 야생화 하나도 저마다 색이 다르고 모양이 다른데, 사람은 얼마나 다르겠는가. 그런데 그렇게 똑같은 체제에서 똑같은 경쟁을 하고 똑같은 길을 가야 한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실패자가 되겠는가. 여러 방식의 삶을 살면 경쟁을 덜 해도 되는데 말이다.

-김 구청장 돈의 가치만으로 도시를 조직하니까 높은 빌딩과 대로가 필요하고 골목길을 없애는 것이다. ‘저성장 시대의 도시정책’이라는 책에서 정석 서울시립대 교수가 나를 염두에 두고 ‘K구청장에게’라는 글을 썼다. 거기에 그는 ‘도시를 떡 주무르듯 하면 안 된다’고 썼다. 그 글을 읽고 깨달은 바가 많았다. 도시를 사람이 사는 공간으로 생각하지 않고 떡처럼 주무르려고 하면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이 다 망가지는 것이다. 사람의 도시가 되려면 우선 길이 연결돼야 하고 다양한 가치가 존중되어야 한다.


서명숙(왼쪽) 제주올레 이사장과 김영배 성북구청장이 제주 서귀포시 대륜동 속골천에서 법환포구까지 걷는 도중 몽돌해변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성북구 제공

▶올레길의 성공이 우리 사회에 던진 메시지는 뭘까.



-김 구청장 올레길은 새로운 삶의 푯대가 됐다. 올레길이 시작된 게 우리 국민이 외환위기를 겪은 1997년부터 딱 10년 된 2007년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올레길은 사람들이 찾아 나가는 새로운 희망의 길이다.

-서 이사장 내가 죽지 않으려고 산티아고에 갔고, 돌아와서 길을 냈다. 올레의 인기는 그 당시 나 같은 사람이 너무 많았다는 방증이다. 길은 시간과 열정으로 찾아내야 하는 것이지, 공사를 해서 토목으로 만드는 것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나는 길을 잇는 여자이지 길을 만드는 여자가 아니다. 식물도 땅이 너무 메말라 있으면 싹이 트질 못하듯 마음 밭에 사람의 위로가 흡수되려면, 자기부터 좀 땅이 비옥해져야 한다. 자연에서 회복한 뒤에야 사람이 주는 위로가 제대로 흡수될 수 있는 것이다.

-김 구청장 원래 사람이나 자연은 리질리언스, 즉 자기복원력이 있다. 대한민국의 90% 이상이 도시화됐다. 도시는 점점 황폐해진 사람들이 사는 곳이 되고 있다. 올레길이 우리 사회에 던져준 메시지는 ‘이제 그만 가야 한다’는 것, 분기점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길을 지나는 속도도 중요한가.

-서 이사장 느리게 걸어야 목적지에 갈 수 있다. 방향을 생각하지 않고 빨리 가면 잘못된 곳으로 갈 수 있다. 그러면 절대 그 목적지에 가지 못하는 것이다. 설령 목적지에 도착하더라도 탈진한 채 도착할 것이다. 그럼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좀 느리게 가더라도 제대로 가는 게 중요하다. 천천히 가는 사람은 가는 과정을 즐길 수 있다. 온전하게 자기 것이 되는 거다.

-김 구청장 마을 민주주의를 하면서 솔직히 그런 고민을 했다. 구청장으로서의 성과가 있어야 하고 그걸 빨리 내놓아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런데 마을 민주주의는 빨리 할 수가 없었다. 각자의 삶에 주인인 사람들이 모여 주인으로서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되겠나’라는 고민도 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하니까 민주주의라는 게 원래 그런 것이라는 깨달음에 도달했다. 아무리 안 좋은 결과가 나오더라도 절차를 끝까지 밟아야 하고 그 과정에 충실한 것, 그 자체가 민주주의다.

▶올해 두 사람의 행로(行路)를 밝힌다면.

-김 구청장 개인적으로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있다. 한편으로 설레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막연함도 있다. 하지만 기대와 희망을 좀더 갖고 싶다. 대한민국도 분기점에 서 있다. 풍요로운 행복을 기준으로 살아갈 수 있는 대한민국이 될 수 있는가. 우리가 국민적 합의에 의해서 지방분권 개헌을 끌어낼 수 있는가 하는 중요한 길목에 와 있다.

-서 이사장 올해로 제주 4·3사건 70주년이다. 제주에서는 너무 오랜 세월 아팠던 이야기다. 권력자들은 과오니까 덮고 민중은 두려우니까 덮으면서 70년을 지내왔다. 노무현 정부에서 처음으로 공식 사과를 했지만, 그 뒤 정권 10년 동안 다시 꽁꽁 얼어붙었다. 4·3사건이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환기될 수 있도록 노력할 생각이다.

제주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은

시사저널 편집국장, 오마이뉴스 편집국장 등 23년에 걸친 기자 생활을 그만두고 스페인 산티아고 길 위에서 고향 제주를 떠올렸다. 산티아고 길보다 더 아름다운 길을 제주에도 만들 수 있음을 깨닫고 귀국 후 사단법인 ‘제주올레’를 발족했다. 10여년간 25개 코스 425㎞에 이르는 제주의 길을 이었다.

김영배 서울 성북구청장은

2003년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행정관을 거쳐 2007년 행사기획 비서관을 지냈다. 2010년 민선 5·6기 성북구청장으로 당선된 후 ‘걸어서 성북 한 바퀴’라는 이름의 도보 행정을 벌이며 골목길 보존에 힘쓰고 있다. 지난해부터 전국자치분권개헌 추진본부 상임대표를 맡아 지방분권 개헌에 앞장서고 있다.
2018-01-10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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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제공 : 정책브리핑 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