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일 성남캠퍼스 `17학년도 입학식장에서 “스마트시스템제어과 학과수석 입학생 김재환”이 여러 번 호명됐다. 한참 후에야 일어나 단상으로 걸어 나간 김재환 학생은 사실 청각 장애 2급의 중증장애인이다. 보청기를 사용하고 있지만 직접 대면해 대화를 해야 원활하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이렇다보니 김 군은 어린 시절부터 혼자 하는 것에 취미를 가졌다.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전자기기를 분해·조립하며 자연스레 기술에 대한 꿈을 키웠고 공업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구체적인 목표 없이 선생님의 추천을 받아 미디어를 전공으로 정했다. 적성에 맞지는 않았지만 여러 분야의 기술을 접해볼 수 있다는 생각으로 프로그래밍과 네트워크 등 다양한 공부를 했다. 김재환 학생은 3학년 1학기, 자격증 준비반을 통해 전기 직종을 접하게 됐다. 담임선생은 전공과 전혀 다른 전기기능사를 준비한다는 김 군을 걱정했지만, 김 군은 늦은 시간까지 전기과 학생들과 공부를 하며 전기기능사 취득에 성공했다. 함께 한다는 기쁨과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얻게 된 계기였다.
3학년 2학기에 현장실습을 나갔던 회사에서는 자동화 장비를 처음 접하며 이 분야의 전문 기술인이 되겠다는 인생의 목표를 세우게 됐다. 자동화 장비를 유지하고 보수를 하며 설계까지 할 수 있는 전문 기술인이 되기 위해 선택한 길은 한국폴리텍대학이었다. 청각 장애를 고도의 집중력으로 극복하고 있는 김재환 학생은 “나에게 기술은 꿈을 갖고 꿈을 실현해나가는 도구다”라며, “장애가 있지만 자동화 분야의 최고 기술인이 되기 위해 앞으로 더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대구에 위치한 섬유패션캠퍼스 패션메이킹과에는 올해로 59세가 된 만학도 박영희씨가 입학했다. 사실 그녀는 39년 전 한국사회사업대학(현 대구대) 병설 전문학교 의상과에서 패션 공부를 시작했다. ‘좋은 신랑감 만나서 시집이나 가라’는 집안의 권유로 그녀의 꿈은 피우지도 못하고 접혔다. 박 씨는 의류 판매 사업체를 운영하던 남편과 십여 년간 일하면서, 언젠가는 옷을 디자인하고, 만드는 일을 하겠다는 소박한 꿈이 생겼다. `08년 의류 제조 사업체를 열었지만 40년 전 배웠던 내용은 기억나지 않았고 실무 경험으로도 해결되지 못하는 일들이 생겨났다.
그러던 중 `14년 일학습병행제 기업으로 참여해 배움과 학습을 병행하는 학습근로자들을 보며 배움에 대한 열망이 새롭게 타올랐다. 그때 처음 폴리텍과 인연을 맺고 장수정 교수의 권유로 패션 전문가에 다시 한 번 도전하기로 했다. 박 씨는 패션 디자인뿐만 아니라 패션업 전반에 걸쳐 이론과 실무 기술을 배울 수 있는 패션메이킹과에 입학했다. 그녀는 학과의 왕언니로 40살 어린 동기들과 패션 전문가로서의 꿈에 한걸음씩 다가가고 있다.
명문대학을 다니다가 기술을 선택한 학생도 있다. 인천캠퍼스 기계시스템과에 재학 중인 고은혁(21) 학생은 중국에서 초, 중, 고등학교를 나왔다. 진로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해왔지만 명문대학에 가면 미래가 보장될 거라는 생각에 서울에 소재한 Y대학교의 인문사회계열의 학부에 입학했다. 예상과는 다르게 시간이 지날수록 졸업 후 어떤 곳에서 어떤 일을 하게 될지 알 수 없는 불투명한 미래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2학년을 마치고 자신의 진로에 대해 여러 방향으로 고민하던 중 아버지의 기계분야 사업에 관심을 갖게 됐다. 기술을 가지면 평생 직업을 가질 수 있다는 확신도 들었다. 고 씨의 부모도 진로에 대한 고민으로 힘들어하던 그녀의 이번 결정에 흔쾌히 동의했다. 기계 분야의 전문 기술자가 되기 위해 고학력자를 대상으로 교육을 실시하는 하이테크 과정에 입학했다. 그녀는 “입학한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지만 하루하루 미래가 뚜렷해지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한때는 철강 관련 대기업에서, 한때는 선박 관련 외국계 기업에서 재료 전문가로 근무했던 이봉규(52)씨. 대학서 금속공학을 전공한 후 25년간 승승장구하던 이 씨는 최근 조선업계 경기불황으로 회사를 그만두게 됐다. 중학교에 갓 입학한 딸이 있는 그는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경제활동을 계속 해야 했다. 그는 자신의 전문 분야를 바탕으로 오랜 시간 일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우연히 TV에서 폴리텍의 베이비부머 과정에 대해 알게 됐고, 기술을 통해 인생 이모작에 성공한 사람들을 보고 자신감도 얻게 됐다. 이 씨는 남인천캠퍼스 특수용접과에 입학해 용접기로 불꽃을 튀기며 새로운 삶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비록 늦은 나이에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지만 10년 후에는 인정받는 전문가가 되는 것이 목표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이우영 한국폴리텍대학 이사장은 “우리 대학은 다양한 사연을 가지고 각자에게 맞는 교육과정에 입학한 학생들이 상당히 많다”며, “최근 취업 절벽의 위기 상황에서도 학생들이 기술을 선택해 우리 대학에 온 만큼 교육 품질로 더 좋은 취업을 이룰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문 의: 홍보팀장 이의선 (032-650-674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