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쇼핑 모델로 출연하시면 어떨까요.”
인기 연예인들이 길거리에서 캐스팅되듯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모델 제의를 받았다. 현대홈쇼핑에서 족욕기를 취재할 때였다. 족욕기를 체험할 수 있는 곳을 아느냐고 묻자 마케팅팀 오형주씨가 “매장에서 판매하지 않는 제품”이라며 방송 출연을 제안한 것이다.17일 오후 6시 40분부터 1시간 동안 족욕기 모델로 출연하기로 결정했다.
●방송 1시간 30분전
모델은 분장을 위해 2시간 전에 방송국에 나와야 한다. 분장실엔 젊은 여성이 가득했다. 연예기획사를 통해 섭외한 모델들이란다. 분장은 모델 스스로 한다. 하루 18시간씩 생방송하다 보니 시간도, 인력도 부족한 까닭. 특이하게도 모두 잔머리카락 한올도 빠져나오지 않도록 머리를 정리했다. 자연스러운 머리 모양이 카메라 속에선 지저분해 보인다고 한 모델이 설명했다.
PD 지시에 따라 흰색 목욕 가운으로 갈아입었다. 연기 내용이 간단히 적혀 있는 A4용지 한 장을 받았다. 출연자는 4인 가족과 좌욕하는 여성 1명, 잡지 읽는 기자였다. 쇼핑호스트 대본도 간단하긴 마찬가지. 핵심 내용만 나올 뿐이다. 그래서 순발력은 호스트의 생명이다.
●방송 시작
20평 남짓한 스튜디오에 들어서자마자 물 온도가 40∼45도인 족욕기에 발을 담갔다. 땀 흐르는 모습을 방송 때 보여주기 위해서다.
“방송시간에만 2만원 할인 혜택, 이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 호스트의 제품 소개가 이어지는 동안 모델들은 연기 연습을 하느라 분주하다. 기자도 “숙향을 건네주면 받아 족욕기에 넣으라.”는 지도를 받았다. 쑥스러워 카메라도, 모니터도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어색한 미소를 머금고, 잡지 책장만 미친 듯이 넘겨댔다. 발은 어느새 붉게 달아올랐다. 등에서도 땀이 흥건했다. 족욕 때문인지, 카메라 때문인지….
연기는 40분 만에 끝났다. 나머지 20분은 찍은 화면을 재방송했다. 다음 방송을 준비하기 위해서다. 쇼핑호스트도 모습을 숨긴 채 목소리만 나온다. 그동안 의상을 갈아입고, 메이크업을 고치는 것. 우아한 백조의 날쌘 발차기와 닮았다.1시간 노동 대가는? 한국인은 10만∼20만원, 외국인은 30만원 정도. 연예인은 200만원 이상이다. 기자는 ‘우정출연’이라 돈을 받지 않았다. 이날 17만 8000원짜리 족욕기가 725개 팔렸다. 데뷔작 ‘흥행 성공’.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