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60% 우울증으로
정부 조직 개편에 따른 소방방재청 해체와 헬기 추락 사고로 인한 소방관 순직 등으로 소방관들의 사기가 그 어느 때보다 땅에 떨어졌다. 열악한 근무 환경, 노후화된 장비 문제와 함께 소방관 상당수가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신문은 3회에 걸쳐 소방관들이 처한 현실과 문제점을 짚어 보고 대안을 찾는 연재물을 마련했다.소방관 경력 15년차인 박모(43) 소방위는 평소 밀폐된 지하 공간에만 들어서면 초임 때 사상자를 처음 본 기억이 떠오른다. 박 소방위는 화재 현장에서 타오르는 불길에 새까맣게 그을린 시신을 본 기억과 그 냄새 때문에 며칠 동안 밥을 먹지 못했다. 그는 “10년 넘게 흘렀지만 비슷한 장소에 가면 첫 충격의 장면과 냄새가 온몸을 감싸 고통을 느낀다”고 털어놨다.
정신적 불안 증세와 함께 호흡기 질환 등 각종 질병을 앓거나 몸에 이상 징후가 있는 소방관도 전체 인원의 절반 가까이 된다. 매년 실시되는 특수건강진단에서 ‘건강관리대상’ 판정을 받은 소방관은 2008년 41%, 2009년 45%, 2010년 50%, 2011년 51%, 2012년 48%에 이른다.
화마(火魔)와 더불어 병마(病魔)에 시달리는 소방관들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2008년부터 올해 5월까지 끝내 자살한 소방관은 모두 44명이나 된다. 1년에 7명 이상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셈이다.
백종우 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통상적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는 환자의 60% 정도가 우울증으로 이어지고, 자살까지 시도하는 경우도 있다”며 “특히 생명을 위협하는 사고 현장에서 구조 활동을 하는 소방관들은 ‘외상 사건’에 노출되는 빈도가 일반인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전국 소방공무원 심리평가 설문조사’에 따르면 소방관들이 1년간 동료의 사망 등 극심한 외상 사건에 노출된 평균 빈도는 7.8회로 조사됐다. 백 교수는 “직업적 특성과 4만여명에 이르는 인원을 고려하면 방재청에서 직접 치료센터나 전문 병원을 운영해 체계적인 치료와 관리를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2012년에 이르러서야 관련 치료가 시작됐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관련 치료 및 상담, 유해 인자 분석 등을 위해 책정된 예산은 지난해 7억 8500만원, 올해 12억 6600만원이다. 관련 치료를 원하는 소방관은 전체의 28.6%지만 넉넉하지 못한 예산과 업무 과중 등으로 1년 안에 치료받은 경험이 있는 소방관은 6.1%에 불과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도 국회는 상담 위주의 치료와 심리 안정 등을 도모하기 위해 ‘국립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센터’를 소방방재교육 연구단지 안에 설치할 것을 권고했지만 그 역시 예산 확보 등을 이유로 미뤄지고 있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2014-07-30 2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