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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공익신고] 벼슬아치 내부 비리 고발하면 노비는 양인으로 신분 올려주고 양인에겐 관직·양반에겐 승진 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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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내부고발자 보호책

세조 2년(1456년) 공주 판관 송맹연이 분대어사(임금의 명으로 지방에 파견돼 민정을 살피던 관리)에게 탄핵돼 수령 자리에서 쫒겨났다. 이 소식을 접한 아전들이 밀고자를 찾아내려고 혈안이 됐다. 유력한 고발자는 관노 득만이었다. 그는 관아의 대소사를 두루 챙기는 일을 맡아 송맹연의 부정 행위를 샅샅이 알 수 있었다. 어사가 공주를 찾았을 때 몰래 그와 접촉했다는 정황도 포착됐다. 관리 이득신과 우성, 김비, 이정근이 그를 불러내 강하게 문초했다. 득만은 “나는 고발자가 아니다”라고 버텨 가까스로 풀려났다.
득만은 여기에 남았다가는 더 이상 살아남기 힘들 것으로 보고 한양에 올라가 어사에게 이 사실을 고했다. 어사가 세조에게 득만의 사연을 알리자 세조는 격분해 관련자 모두를 중형에 처하라고 명했다. 대신들은 난감해했다. 고발 보복행위에 대한 처벌 규정이 없었고 득만을 고문한 이들 가운데 공신의 손자도 있어서였다. 사헌부는 고심 끝에 “왕에게 참된 것만 아뢰야 하는 ‘조당진언(阻當陳言)의 율(律)’을 적용하라”고 건의했다. 결국 왕은 조당진언의 율에 적시된 기준보다 한단계씩 낮춰 처벌했다. 이득신에게 장 100대에 3000리 유배형, 김비·이정근에게 각각 장 100대에 3년 노역형을 내렸다. 우성의 경우 공신의 손자여서 신체형 없이 파직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중종 4년(1509년) 엄동설한에 한 황해도 사람이 신무문(경복궁 북문) 밖에서 억울함을 호소하며 격쟁(꽹과리나 북 등으로 주변을 시끄럽게 해 왕의 이목을 끄는 행위)을 했다. 그가 행대감찰(지역을 다니며 비위를 살피는 감사)에게 고을 수령의 비리를 고발했는데, 수령이 이 사실을 눈치채고 복수하려 한다는 내용이었다. 왕은 이 사안을 조사해 그가 보복받는 일이 없게 하라고 명했다.

역대 왕들은 진실한 언로를 확보하는 것이 민심을 얻는 데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여겨 ‘내부 고발자’를 보호하는 데 누구보다 앞장섰다.

성종 19년(1484년) 한 사헌부 간관이 왕에게 “대신 김석이 어머니 상(喪) 중에 기생을 끌어들였다”며 탄핵했다. 왕이 조사 경위를 묻자 그는 “어떤 관리에게서 전해 들었다”라고 답했다. 왕은 “누가 그런 말을 했느냐”고 재차 추궁했지만 간관은 더 이상은 밝힐 수 없다고 맞섰다. 결국 그는 옥에 갇혔다. 사헌부는 왕에게 “김석 건을 제보한 이는 관리 권건”이라고 밝힌 뒤 “이런 식으로 제보 출처가 밝혀지면 간관들은 ‘들을 곳’이 없어져 조정 내 언로도 막힌다. 앞으로 대간의 말 출처를 밝히는 것은 불가하다”는 공식 입장을 냈다. 머쓱해진 성종은 한 발 물러나 옥에 가둔 간관을 풀어줬다. 이런 진통 끝에 조정에는 간관이 왕에게 말의 출처를 밝히지 않는 전통이 생겨났다.
곽형석 국민권익위원회 대변인
고발자를 보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고발로 인해 생겨날 수 있는 경제적·사회적 어려움을 근본적으로 해결해 주는 것이다. 이를 위해 조선 시대에는 내부고발자에 대해 “그가 노비면 양인으로 풀어주고, 양인이면 관직을 주며, 관리면 승진시킨다”는 보호책을 썼다. 고발자에 대한 직접적 보복만을 막아주는 소극적 보호책에 머물고 있는 지금보다 훨씬 앞선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도 조선의 사례를 거울삼아 신고자의 어려움에 좀 더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더 크게 포상하는 방식으로 패러다임을 바꿀 필요가 있다.

■출처:고려사 권85, 형법지2, 포도조(捕盜條), 세조 2년(1456년) 3월 8일, 성종 19년(1488년) 1월 14일, 중종 4년(1509년) 1월 15일

곽형석 명예기자(국민권익위원회 대변인)
2017-10-23 3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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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제공 : 정책브리핑 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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