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물 방지 위해 가족은 동행 못해
춘향이와 이별 1년 만에 암행어사?
급제했어도 바로 발탁 사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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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춘향전을 조선의 실제 행정체계와 비교해 보면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장면으로 가득 차 있다. 춘향전이 조선시대 행정제도에 대한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암행어사 출도를 외치며 춘향이를 구하는 이몽룡과 퇴기의 딸 신분임에도 이몽룡의 부인이 된 뒤 임금으로부터 정렬부인(貞烈夫人) 작위까지 받는 춘향이 이야기가 실제 조선 후기 사회에서 어떻게 이해될지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하다.
춘향전 속 이몽룡은 남원 부사로 임명된 이한규의 아들이다. 아버지를 따라 남원에 내려갔다가 우연히 춘향을 만난다. 그런데 아버지 임지에 가족이 전부 이사하는 것이 가능했을까? 조선의 법은 지방수령으로 부임할 경우 가족을 데리고 가지 못하게 했다. 간혹 아들이 따라나서기도 했지만 가족 전체를 동반할 수는 없었다. 수령이 가족을 동반할 경우 그 가족 생활비까지 지방 재정으로 충당해야 해 부담이 컸고 수령의 가족은 곧 수령과 동급 우대 대상이 될 수밖에 없어 부임한 지역 주민들 입장에서는 ‘모셔야 할 분’이 더 늘어나 힘이 들 뿐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가족 생활이 마을에 노출돼 있다 보니 언제든지 청탁자들의 뇌물 대상이 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온갖 핑계를 대 수령의 가족을 행사에 초대하고 선물을 주고 식사를 대접하면서 친분을 쌓아 청탁을 넣는 방식이다. 이런 비리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수령이 본연의 역할에 집중하고자 벼슬아치들은 지방에 혼자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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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혜경 호서대 창의교양학부 교수 |
그럼에도 이몽룡이 바로 암행어사로 발탁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한 설정이다. 조선에서 갓 급제한 인물이 암행어사로 발탁되는 사례는 없었다. 과거에 급제하면 종9품~종6품 관직을 받는데, 장원일 경우 종6품직에 임명돼 동기보다 4~5년 정도 빨리 승진할 수 있었다. 암행어사는 ‘당하시종관’(堂下侍從官) 중에서 임명됐다. 3품 이하 당하관(중하위 공무원)으로서 왕을 가까이서 모시는 신하들 중에 파견됐다. 시종관은 대개 5사인 승정원,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 예문관 소속 관리를 말한다. 그러므로 현실에서 이몽룡이 암행어사가 되려면 장원급제한 뒤 최소한 몇 년은 더 근무했어야 하고 그것도 초고속승진을 거듭했어야만 가능했다.
■한국행정연구원 ‘역사 속 행정이야기’ 요약
노혜경 교수 (호서대 창의교양학부)
2018-03-12 3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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