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리가 나던 그해였던가, 피난민 열차가 설 적마다 억수 같은 사람들을
부려놓고는 떠났다 한다.
사람들이 멧새처럼 터를 잡던 그 시절에, 처녀는 장마당 한켠에서
채소를 따듬었다.
이슥해져 돌아오던 날마다 봄은 자꾸 어지럽기만 해서 걸음마다 달이
울렁이고
그런 밤에는 우거진 복숭꽃마다 꼭 처녀귀신이 앉았다 했다.
저 너머 강변에는 몇 번이고 큰 물이 져나갔다.
손이 야물던 색시의 점빵에서 아이들은 십리 사탕을 입에 물고 십리길의
재를 넘어 학교를 다녔다.
가난을 감춰 쥔 조막손들이 눈치를 볼 때마다, 소 같은 눈을 꿈벅이던
신랑은 너털웃음을 웃었다.
해마다 진 벚꽃이 문에 날아와 말라붙으면 봄비가 몇 번이고 또
씻어내렸다.
덧칠을 잊어버린 창살 마디에 꽃물이 때가 졌다. 사람들은 벚꽃처럼 나고
자라 떠나갔고.
조약돌 같던 점포들은 모두 이가 빠져버린 채, 공터에 남은 슈퍼 집
미닫이가 바람에 들썩인다.
노인네는 오늘도 떠나버린 이를 추억하며 누군가를 맞이하듯 문창을
닦는다.
이른 봄볕이 정갈한 유리창을 넘어와 과자 박스의 빛을 바래고 있다. 유상록(서해해양경비안전본부 주무관)
20회 공무원 문예대전 동상 수상작
2017-08-21 3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