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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매일신보와 국채보상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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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채보상운동이란 대한제국이 일본에 진 빚 1300만원을 국민성금으로 갚자는 ‘나라 빚갚기 운동’을 말한다. 이 운동은 1907년 1월29일 대구 광문출판사 김광제 사장과 부사장 서상돈의 발의로 시작됐다. 이들은 항일구국지로 서울신문의 전신인 대한매일신보의 대구지사원을 겸하고 있었다. 이들을 중심으로 대구의 유력 인사들이 ‘담배를 끊어 국채를 갚고 주권을 회복하자.’며 모금운동에 나선 것이다. 당시 일제는 군수품을 들여오면서 담배도 함께 도입, 대구 서문시장을 중심으로 유통됐으며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일제의 담배 유통에 대한 비판이 커졌다.


특히 이 운동은 대한매일신보의 보도에 의해 전국으로 번져나갔다. 발행부수 1만부를 자랑하던 최대 권위지 대한매일신보는 1907년 2월21일자에 대구민의소가 발표한 ‘국채보상취지서’전문을 싣고 모금운동에 활을 당겼다. 운동에는 전국 고관이나 양반·부유층은 물론 노동자·농민·부녀자로부터 군인·학생·기생·승려 등에 이르기까지 참여하지 않은 계층이 없었다.

2007-2-20 0:0: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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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제공 : 정책브리핑 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