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이 운동은 대한매일신보의 보도에 의해 전국으로 번져나갔다. 발행부수 1만부를 자랑하던 최대 권위지 대한매일신보는 1907년 2월21일자에 대구민의소가 발표한 ‘국채보상취지서’전문을 싣고 모금운동에 활을 당겼다. 운동에는 전국 고관이나 양반·부유층은 물론 노동자·농민·부녀자로부터 군인·학생·기생·승려 등에 이르기까지 참여하지 않은 계층이 없었다.
2007-2-20 0:0:0 12면
특히 이 운동은 대한매일신보의 보도에 의해 전국으로 번져나갔다. 발행부수 1만부를 자랑하던 최대 권위지 대한매일신보는 1907년 2월21일자에 대구민의소가 발표한 ‘국채보상취지서’전문을 싣고 모금운동에 활을 당겼다. 운동에는 전국 고관이나 양반·부유층은 물론 노동자·농민·부녀자로부터 군인·학생·기생·승려 등에 이르기까지 참여하지 않은 계층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