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음걸음 만난 서거정 시비 봄오는 산책로에 운치 더해
‘금빛은 수양버들에 들고, 옥빛은 매화에서 떨어지는데/ 조그마한 못의 새로운 물은 이끼보다 푸르네/ 봄의 근심과 봄의 흥위(興慰), 어느 것이 더 깊고 얕을까/ 제비도 오지 않고 꽃 또한 피지도 않았네.’중랑구 면목동 사가정공원엔 조선조 문인 서거정(1420~88)의 재능을 엿볼 수 있는 시비들이 띄엄띄엄 세워져 자칫 무료해지기 쉬운 산책길의 운치를 더해준다. ‘春日’(봄날)이란 시비는 2월 끝자락을 음미하기에 제격이다.
삶이 가려워 옷 벗은 나무들, 나무계단 옆 바위에 내려앉은 하얀 양탄자 같은 잔설들, 주인 잃고 헤매는 강아지 한 마리가 서성이는 곳…. 그곳엔 유난히 추웠던 겨울이 떠나고 있다.
지하철7호선 사가정역 1번 출구에서 불과 5분 거리인 사가정공원을 걷다보면 이별이 아쉬운 겨울과 봄을 재촉하는 햇살을 동시에 만난다.
공원은 매월당 김시습(1435~93)과 함께 당대 최고의 문인으로 꼽혔던 서거정 선생이 당시 용마산(아차산) 부근에 거주했던 점에서 호 사가정(四佳亭)을 따 만들었다. 사가정은 당시 파주 도라산에 있던 정자 이름으로, 자신의 이름과 발음이 비슷해 재치있게 빌린 것이란다. 선생은 세종에서 성종에 이르는 동안 69세로 생애를 마칠 때까지 6조 판서와 한성부 판윤, 대사헌, 대제학 등을 역임했고 ‘경국대전’, ‘동문선’, ‘동인시화’, ‘필원잡기’ 등을 저술한 것으로 유명하다.
2005년 문을 연 사가정공원은 주민 건강을 책임지는 허파이기도 하다. 11만㎡ 규모의 공원에는 말 동상과 어우러지는 어린이놀이시설, 건강지압로, 약수터, 자연학습원을 갖췄다. 함께 들어선 중랑문화체육관에선 수영, 헬스로 몸을 다질 수 있어 가족이나 연인과 들러도 좋다.
공원을 관리하는 이중규(57)씨는 “평소 좋아하는 클래식, 영화음악을 틀어줘 폭포수를 보러 왔다가 아쉽게 발길을 돌리는 사람들을 위로해준다.”면서 “허기는 사가정역 앞 사가정시장에 들러 따끈한 찐빵, 순대로 달래면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글 사진 강동삼기자 kangtong@seoul.co.kr
2011-02-25 1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