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게시대 턱없이 부족” 상인들 생존 건 숨바꼭질
‘불법 현수막은 행정력을 낭비하는 골칫덩이인가, 불황에 따른 업주들의 절박한 의지 표현인가.’인천 신도심에 해당하는 남동구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현수막과의 전쟁이 벌어진다. 200여개의 음식점·상가가 몰려 있는 논현택지개발지구 중심상업지역. 이곳의 업주나 광고대행사들은 상점을 홍보하는 현수막을 공용주차장 벽이나 가로수 등에 거는 것이 큰 일과다. 어떤 업소는 아예 현수막을 전담하는 직원을 두고 있다. 하지만 구청 단속요원들의 기동력도 만만치 않아 어느새 나타나 현수막을 철거해 간다. 이 때문에 단속반이 나타나는 시간대에는 현수막을 숨겨 뒀다가 사라지면 다시 내거는 숨바꼭질이 되풀이되곤 한다. 때로는 위험을 무릅쓰고 육교에 현수막을 내거는 행위도 주저하지 않는다.
업주만을 탓할 일은 아니다. 이곳에는 합법적으로 현수막을 걸 수 있는 지정게시대가 한 곳도 없다. 이웃한 남동공단에 큰 거리마다 게시대가 있는 것과 대조된다. 최모(48)씨는 “요즘같이 장사가 안 될 때는 홍보라도 열심히 해야 하는데 지정게시대가 없어 현수막 걸 자리를 놓고 업주들 간에 치열한 신경전이 벌어진다”고 말했다. 불법 현수막 과태료는 12만∼14만원에 달하지만 ‘홍보전이 매상을 좌우한다’고 생각하는 업주들은 별로 개의치 않는다.
남동구 도시관리공단은 사거리 등에 지정게시대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지역 전체에 78개밖에 없어 인구 50만명이 넘는 도시치고는 턱없이 부족하다. 게다가 게시대는 현수막(가로 6m 40㎝, 세로 70㎝) 6개를 10일 동안만 걸 수 있다. 때문에 관리공단 홈페이지에서 전산추첨하는 날이면 업주들이 이 일에 매달린다. 간석·구월·만수동 등 도심권의 경쟁률은 보통 10대1이 넘는다. 로데오거리가 있는 곳에 당첨되려면 1년 이상 공을 들여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지정게시대가 인기를 끄는 것은 철거를 우려하지 않아도 되는 데다 10일간 게시비용이 2만 8720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강희섭(45) 논현상가번영회장은 “현수막을 둘러싼 업주와 단속요원의 실랑이야말로 행정력 낭비”라며 “거리 미관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지정게시대를 증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학준 기자 kimhj@seoul.co.kr
2013-01-24 1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