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뉴얼보다는 훈련에 힘써라
국가안전처 설립과 별개로 재난상황에 대비하는 위기관리 매뉴얼을 정비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과제가 됐다. 하지만 기껏 만들어놓고도 제대로 활용하지 않거나 현장 상황에 맞지 않는다면 없느니만 못한 결과를 초래한다. 반복훈련을 통해 매뉴얼을 수정하고 보완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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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의 혁신 노력은 고위급 지휘체계에만 신경을 집중하고 있을 뿐이다. 지자체의 재난대비 역량을 키우기 위한 논의는 뒷전이다. 순환근무로 전문성 없는 인력으로 구색만 갖춰놓은 게 전부인데다 실질적인 훈련과 점검을 위한 중앙정부 예산지원도 한참 부족하다.
국립재난안전연구원의 ‘재난관리 역량 진단을 통한 교육훈련 개선방안’에 따르면 지자체 재난담당 공무원 중 32.6%만이 전문성이 있다고 자체평가됐다. 3년 이상 전문 분야에서 일한 사람은 19%뿐이고 자신들이 이수한 재난 관련 교육훈련에 대해 72.9%가 실무와 연계성이 떨어진다고 대답했다.
2012년 11월 경북 구미 불산가스 누출사고 이후 여러 화학물질 시설에서는 각종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위험작업 인력을 외주업체에 맡기고 작업인원은 비정규직으로 하면서 사고 위험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구미 사고 당시 매뉴얼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 비판을 받았던 환경부는 매뉴얼을 수정했지만, 정작 제대로 된 실제 적용 훈련은 한 차례도 하지 않았다.
일본 후쿠시마 사고 이후 경각심이 높아진 원자력발전소 위기대응도 매뉴얼과 훈련을 강화하는 제도 개선을 진행하고는 있지만 훈련량 자체가 절대적으로 부족한데다 일부에서 보여주기식이라는 지적을 받으면서 불안감이 가시질 않는다. 지난 13일 서울 강남구 무역센터에서 실시한 가상 화재 발생 훈련 역시 과거와 별반 다르지 않다. 방문객 혼란을 우려해 비상경보음도 켜지 않았고, 지하 코엑스몰은 훈련에서 제외시켰다. 상주인원 가운데 75%가량이 훈련에 참여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전문가 의견] “대형 재난 땐 학습과 훈련 따른 판단력이 더 중요”
재난관리 전문가들은 ‘매뉴얼 만능주의’를 경계했다. 이들은 문제가 터질 때마다 매뉴얼을 그때그때 만들다 보니 정작 사고가 터졌을 때 매뉴얼이 작동하지 않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강조했다. 최소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이를 중심으로 훈련을 강화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라고 지적했다.
이동규 동아대 석당인재학부 교수는 “일반적인 원칙을 정리한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그것만이라도 열심히 훈련해서 준수하도록 하는 게 효과적이다”고 말했다. 이어 “대형 재난은 매뉴얼이 아니라 학습과 교육훈련, 경험에 따른 판단력이 더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정부 재난관리 전문가는 “모든 사안을 아우르는, ‘만기친람’형 매뉴얼을 만드는 건 애초에 불가능하다”면서 “정부 스스로 무슨 일만 있으면 매뉴얼을 만들어라, 매뉴얼을 점검해라 하는 매뉴얼 만능주의에 빠져 있다”고 비판했다. 노진철 경북대 사회학과 교수 역시 “지금처럼 ‘땜방’으로 매뉴얼 만드는 방식으로는 사람들이 숙지하기 힘들고, 급박한 현장 상황에 적용하기도 어렵다”면서 “다양하게 응용할 수 있는 형태로 단순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그때그때 매뉴얼을 만든 뒤 미리 정해놓은 시나리오에 따라 훈련하는 행태를 되풀이하면 위기 상황에서 예상이 빗나가고 매뉴얼은 무용지물이 되며, 결국 위기로 치닫게 된다”고 경고했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2014-05-27 2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