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서비스 업그레이드 1.0] <59> ‘전세금 반환보증’ 개선 시급
30대 직장인 A씨는 최근 이사를 위해 전세 계약을 하다가 집주인과 실랑이를 벌였다. 전세보증금 반환보증보험 가입 때문이었다. A씨는 전셋값 하락으로 계약 기간이 끝난 뒤 보증금을 제때 돌려받지 못할 수 있다는 걱정에 전세금 반환보증 가입을 원했다. 하지만 집주인은 “그런 걸 왜 하냐”는 반응이었다. 고민 끝에 반환보증 가입을 포기한 A씨는 “알아보니 집주인 동의 없이 가능하다곤 하지만 가입한 뒤 집주인에게 통보가 되기 때문에 결국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더라”면서 “나중에 무사히 전세금을 돌려받아야 하는데 관계가 나빠질까 걱정돼 가입하지 않기로 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집값이 전세보증금보다 더 떨어지는 ‘깡통 전세’나 집주인이 새로운 세입자를 구하지 못해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역전세난’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전세보증금 반환보증보험에 가입할 때 ‘집주인 눈치보기’는 여전하다. 게다가 단독·다가구 주택은 아파트에 비해 절차가 까다롭고 보증료도 비싸 가입이 더 힘든 것으로 나타났다. 전세금 때문에 불안해하는 세입자를 제대로 보호하기 위해서는 전세금 반환보증 가입 의무화 등 개선 방안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12일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달까지 전세금 반환보증 가입 실적은 총 13만 100건, 보증금액은 25조 5523억원으로 집계됐다. HUG에서 2013년 9월 출시한 전세금 반환보증 상품은 2015년 3941건(7221억원), 2016년 2만 4460건(5조 1716억원), 2017년 4만 3918건(9조 4931억원), 지난해 8만 9351건(19조 367억원)으로 매년 가입이 급증하고 있다.
전세금 반환보증은 계약 기간 이후 집주인으로부터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할 경우 보증 기관인 HUG가 집주인 대신 전세금을 세입자에게 지급하고 차후 집주인에게 구상권 등을 통해 받아내는 제도다. 정부가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세입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도입했다. 전셋값 하락으로 보증금을 제때 받지 못해 이사를 가지 못할 경우가 걱정되는 세입자, 전세로 살고 있는 집이 경매에 넘어가 보증금을 못 받을까 우려되는 경우, 보증금 회수를 위한 법적 조치를 스스로 하는 것이 걱정될 때 가입하면 좋은 상품이다.
민간 보증기관인 서울보증보험에서도 같은 상품에 가입할 수 있다. 서울보증보험에서 공급한 전세금 반환보증 실적도 2015년 1만 4156건(1조 9459억원), 2016년 1만 5705건(2조 6354억원), 2017년 1만 7987건(3조 472억원), 지난해 2만 5115건(4조 3475억원), 올 상반기 1만 4295건(2조 5224억원)으로 점점 늘고 있다.
전세금 반환보증은 서민 주거안정을 위한 대표 상품이지만 집주인의 눈치를 보느라 가입을 주저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HUG는 지난해 2월부터 집주인 동의 절차를 폐지해 세입자들이 더 쉽게 가입할 수 있도록 했다. 이전에는 상품 가입을 위해 집주인의 확인 절차가 필요했지만 지금은 집주인 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세입자가 반환보증에 가입할 수 있다.
문제는 전세금 반환보증에 가입하고 나면 집주인에게 내용증명 등의 형태로 통지해야 한다는 점이다. 전세 계약에서 ‘을’의 입장인 세입자가 집주인이 반대할 경우 자유롭게 상품에 가입할 수 있겠느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금융권 관계자는 “전세금 반환보증 자체가 집주인이 돈을 못 갚게 되는 경우를 대비한 상품이기 때문에 기분 나빠하는 집주인들이 많다”면서 “세입자가 가입하겠다고 나서면 대부분의 집주인들이 꺼려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하지만 HUG와 서울보증보험은 사고가 났을 때 절차를 진행하기 위해 집주인 통지를 생략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HUG 관계자는 “사고가 났을 때 보증기관이 대신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준 이후 집주인이 보증기관에 돈을 돌려줘야 한다는 사실을 미리 알리기 위해 통지를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보증보험 관계자도 “채권 양도는 민법에 따라 채무자에게 통지하도록 돼 있어 집주인에게 통지를 안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단독·다가구 주택 세입자에게도 가입 문턱이 높긴 마찬가지다. 구분 등기가 돼 있지 않은 단독·다가구 주택의 세입자들이 전세금 반환보증에 가입하려면 아파트나 주거용 오피스텔과 달리 추가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집주인이나 공인중개사가 확인한 ‘타 전세계약 체결 내역 확인서’를 내야 하는데 이 확인서에는 해당 주택 다른 세입자의 전세 계약 기간과 전세보증금 등을 쓰고 집주인이나 공인중개사의 확인 서명도 기재해야 한다. 사실상 집주인의 동의가 필요한 것이다.
게다가 단독·다가구 주택은 보증료율도 연 0.154%로 아파트(연 0.128%)보다 높다. 아파트보다 보증 위험이 상대적으로 큰 것으로 평가돼 보증금액이 같아도 단독·다가구 주택 세입자들이 더 많은 보증수수료를 내야 한다. 예를 들어 아파트 전세보증금이 1억 5000만원이라면, 세입자가 2년 동안 38만 4000원을 보증료로 내면 전세금을 보호받을 수 있다. 반면 단독·다가구 주택의 경우 똑같이 전세보증금이 1억 5000만원이라 하더라도 2년 동안 46만 2000원을 내야 해 아파트보다 7만 8000원 더 비싸다.
이런 어려움 때문에 단독·다가구 주택의 전세금 반환보증 가입 비율은 8.0%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HUG의 주택 유형별 전세금 반환보증 가입 건수 비율은 아파트(62.1%), 다세대주택(17.1%), 오피스텔(11.1%), 다가구주택(5.6%), 단독주택(2.4%), 연립주택(1.7%) 등의 순으로 집계됐다.
단독·다가구 주택 세입자들이 제대로 전세금을 보호받지 못한다는 지적이 이어지자 HUG는 제도 개선안을 마련 중이다. HUG 관계자는 “단독·다가구 주택 등 구분 등기가 돼 있지 않은 유형에 대해 전세금 반환보증 상품 개선 작업을 진행 중이고 연내 완료를 목표로 하고 있다”면서 “기존에 단독·다가구 주택은 선순위 채권 금액을 확인해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손실 위험을 최소화한다는 취지로 추가 서류 요건을 두고 있었다”고 밝혔다.
세입자들이 전세금 반환보증에 가입하기 쉽지 않다는 지적이 이어지자 서민들의 전세금 불안을 근본적으로 줄이기 위해서는 아예 의무 가입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김성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부동산건설개혁본부 국장은 “집주인들은 임대차 시장을 투명화하는 것을 꺼리고 세입자들은 수수료 부담이 있어 전세금 반환보증 활성화가 제대로 되지 않는 상황”이라면서 “반환보증 가입을 의무화하면서 저소득층의 경우 국가에서 수수료를 지원해 주는 방안도 고민해 봐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전문가들은 전세금 보증보험 가입 의무화를 위한 조건 등을 심도 있게 검토해야 할 시점이라고 조언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최근 서울은 전셋값이 오르고 있지만 지방은 깡통 전세 우려가 여전하고 서울도 언제든지 다시 전셋값 하락 문제가 불거질 수 있어 대비가 필요하다”고 경고했다. 이어 “전세금 반환보증 가입을 의무화하려면 비용 분담 문제를 먼저 논의해야 할 것”이라면서 “집주인에게 수수료를 물리면 세입자에게 비용을 전가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2019-11-13 1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