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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왜군 순절비가 경북 고령中 교훈비로 둔갑됐다

대가야 멸망 당시 왜군 장수 비석 비 앞면 글씨 지우고 교훈 새겨

입력 : 2017-06-14 18:12 | 수정 : 2017-06-15 02:08 폰트 확대 폰트 축소 프린트하기
경북 고령의 한 공립학교가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이 제작한 왜군(倭軍)의 충절을 기린 순절비를 그 학교의 교훈비로 세워둔 것으로 확인됐다. 이 순절비는 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경영했다는 내용을 담은 ‘일본서기’를 출처로 한다. 이에 고령군의 향토사학자들은 “교육 현장에 일제 침략 잔재가 버젓이 자리해서는 안 된다”면서 조속한 철거를 요구하고, 역사교훈의 도구로 쓰자고 제안했다.
1939년 미나미 지로(南次) 제7대 조선 총독이 경북 고령군 대가야읍 연조리 고령향교 인근 옛 대가야 왕궁터에 세운 비석 2개 앞에서 고령군청 직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중앙의 큰 비석은 고대 일본이 대가야국을 세웠다는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하기 위해 세운 ‘임나대가야국성지비’이며, 원 안의 오른쪽 비석은 562년 대가야에 출병했다 전사했다는 쓰키노기시 이키나의 순절비.
고령군 제공

14일 고령의 원로 향토사학자 등에 따르면 고령군 대가야읍의 고령중학교의 교훈비에는 원래 대가야 멸망 당시 왜군 장수였던 쓰키노기시 이키나가 이곳에서 죽었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었다. 비 앞면의 ‘조이기난순절지(調伊企難殉節址) 남차랑(南次) 서’에서 알 수 있다. 뒷면에는 쓰끼노기시 아내 오오바코의 하이쿠(일본 고유시)가 새겨졌다고 한다. 쓰끼노기시는 일본 학계에서 임나일본부설의 근거로 드는 ‘일본서기’(日本書記)에 등장하는 왜군 장수로, 562년 대가야가 신라의 침략으로 멸망할 당시 출병했다가 전사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이 순절비는 일제강점기인 1939년 미나미 지로(南次) 제7대 조선 총독(1936~41)이 고령 대가야읍 연조리 고령향교 인근 옛 대가야 왕궁터에 ‘임나대가야국성지비’(任那大伽倻國城址碑)와 함께 세웠다. <서울신문 6월 13일자 13면 참조> 이런 기념물은 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과거에 경영했으니 일제의 침략이 당연하다고 강조한 것이다.
고령중학교 교훈비로 둔갑한 쓰키노기시 이키나 순절비.
고령군 제공

고령중 교훈비 뒷면에 두 줄 시는 쓰키노기시 이키나 아내 오오바코가 지은 하이쿠(和歌) “가야국의 성 위에서 오오바코는 대화(일본)를 그리며 손수건을 흔든다”의 일부로 희미하게 남아 있다. 맨 왼쪽에 비를 세운 미나미 총독의 ‘南’자도 어렴풋이 보인다.
고령군 제공

그러다 순절비는 광복이 되자 고령초교 내 대가야시대 우물터 인근으로 옮겨져 돌다리로 사용되었다. 고령중학교의 관계자가 1947년 11월 개교하면서 이 순절비의 앞면을 모두 깍아내고 교훈을 새겨 교정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앞면에 ‘굳세고 참되고 부지런하자’라는 교훈을 새겼으나 뒷면의 하이쿠는 대충 지운 탓에 일부가 희미하게 남아있다.

향토사학자들은 “비록 비석의 앞면 글씨는 모두 지워 없어졌지만, 근대기 일제 침략의 흔적을 담고 있는 비석”이라며 “새정 부에서 가야사를 연구한다니, 이 비석을 제자리로 돌려놓고 일제 침략과 역사 왜곡의 교육자료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나일본부설은 일제강점기에 한국 침략을 정당화하는 정한론(征韓論)의 역사적 근거로 활용됐지만, 일본 역사학자들은 한·일공동역사연구를 하던 2010년부터 이런 주장을 폐기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고령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2017-06-15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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