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 1·2가에 위치한 유명 패스트푸드점들이 몰려드는 사채업자와 브로커들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10∼20대의 전용 공간으로 인식됐던 패스트푸드점을 40∼60대 사채업자와 브로커들이 점령한 것.불황으로 이들의 주무대였던 낙원동 일대 다방들이 사라지면서 지난해 연말부터 사채업자와 브로커들이 저렴하고 쾌적한 패스트푸드점으로 대이동을 하고 있다.
| 사채업자 등이 활동 주무대였던 종로 1∼2가… 사채업자 등이 활동 주무대였던 종로 1∼2가 일대 다방들의 잇단 폐업으로 근처 패스트푸드점으로 이동,진을 치자 업주들이 고육책으로 출입금지 알림판을 영업점 입구에 붙이고 있다. 정연호기자 tpgod@seoul.co.kr |
참다 못한 롯데리아,맥도널드,버거킹 등 업체들은 아예 ‘사채업자 및 브로커 출입금지’라고 적힌 이색 팻말까지 입구에 내걸고 관할 경찰 지구대에 하소연까지 했지만 이들을 몰아낼 방법을 찾지 못해 발만 구르고 있다.
16일 오전 10시30분쯤 종로 2가 롯데리아 종각역점.이른 시간이지만 말쑥한 양복 차림에 서류가방과 각종 서류뭉치를 든 10여명이 삼삼오오 앉아 있었다.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40대 남성부터 지적도를 펼쳐놓고 부동산 매매를 상의하는 60대까지 외형만 보면 영락없는 일반 사무실의 모습이었다.한 남성은 큰 목소리로 “이거 참.박 사장이 해줄 돈이 1억원이야.빨리 해결해야지.말로만 된다고 하면 어떻게 하란 말이야.”라며 휴대전화에 화풀이를 하고 있었다.옆자리의 60대 남성은 마주 앉은 여성에게 부동산 매매를 끈질기게 권유하고 있었다.
이들의 대화 내용은 십중팔구 채권 매매와 돈거래에 관한 것이었다.액수는 억대를 넘어서는 것이 대부분이었다.결코 평범하지 않은 이들의 정체는 사채업자와 브로커.이들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매일 이곳으로 출근한다고 가게 종업원들이 귀띔했다.지난 2월 출입금지 팻말을 내건 가게측은 “평일 오전에는 사채업자가 평균 수십명씩 몰려 일반 손님보다 더 많다.”고 밝혔다.
3층 건물에 250석 규모인 맥도널드 종로2가점은 지난 3월 고육지책으로 출구 3곳 모두에 ‘사채업자 출입금지’ 팻말을 내걸었다.하지만 2,3명씩 짝지은 업자들이 요즘도 평일에만 10개팀 정도 몰려 2∼3층을 차지하기 일쑤다.롯데리아 종각역점 매니저 송모씨는 “여러 차례 나가달라고 설득하지만,‘아들뻘인 젊은 사람이 위아래가 없다.’는 호통만 듣는다.”면서 “일반 커피숍이 비싸고 오래 앉아 있기 힘든 데다 날씨가 무더워지자 에어컨과 화장실을 갖춘 쾌적한 패스트푸드점에 몰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들은 300원짜리 아이스크림콘이나 1200원짜리 아이스커피를 시켜놓고 최소한 2시간 이상 앉아 있는 게 기본이다.그렇게 일반 손님이 붐비는 오후 7∼8시까지 자리를 차지한다.맥도널드 종로2가점의 매니저 이혜언(28·여)씨는 “40∼60대 아저씨들이 종일 죽치다 보니 정작 10∼20대 손님은 들어왔다가 바로 나가버린다.”면서 “전화 목소리도 큰 데다 구두를 벗고 양말만 신은 발을 의자에 올리는 일도 많아 일반 손님의 항의가 끊이지 않는다.”고 말했다.이씨는 “본사에서도 이 때문에 골치를 썩이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가게측의 신고로 경찰이 지난달 초 한 패스트푸드점에 출동한 사례도 있었다.종업원과 사채업자간의 말싸움으로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 것.당시 현장에 갔던 종로지구대 임두천 경사는 “최근 들어 사채업자나 브로커로 인한 영업방해 신고가 종종 들어온다.”면서 “검문검색을 위해 신분증을 요구해도 거부하거나 ‘손님을 차별하냐.’고 억지를 쓰면 별 다른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관할 종로경찰서 관계자는 “낙원동 일대의 다방들이 불황으로 문을 닫자 사채업자들이 속속 종로 일대 패스트푸드점으로 몰리면서 갖가지 진풍경을 빚고 있다.”면서 “사건·사고가 발생하지 않으면 경찰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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