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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덕의 서울야화] (24) 추억의 신발 검정 고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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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다시 생각해 봐도 어린 시절에 신고 다니던 검정고무신이 더없이 좋았습니다. 추적추적 가을비라도 한번 오고 나면 마을 앞 신작로에서부터 질퍽질퍽 진흙탕 길이었거든요. 이렇게 진흙탕길을 걸어다니기에도 그만이었고, 마른 흙길을 걸어다니기에도 그만인 ‘수륙양용’이었던 겁니다.

우리 어린 시절엔 이 검정고무신 한 켤레를 새로 사 신게 되면 괜히 이집저집 돌아다니며 자랑하고 싶어했습니다.

지난날 ‘국민의 신발’은 고무신이고, 그것도 검정고무신이었던 거죠.

또 이 검정고무신 한 켤레만 있으면, 흘러가는 시냇물 위에 띄워 놓고 누구의 ‘고무신 배’가 더 빨리 물위에 떠가는가를 겨루는 시합도 했고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이 검정 고무신이 처음 등장한 게 언제쯤부터였는가 하면 지금으로부터 90년 전인 1916년입니다. 일제강점기였던 그 당시, 일본 고베 상인들이 우리나라 고무신 시장을 독점하고 있었거든요. 그러다가 1920년 구한말 법무대신을 지내고 미국대리공사를 역임한 이하영이 서울 원효로 일가에 ‘대륙 고무 공업사’를 세우면서부터 본격적으로 한국인들에게 보급되기 시작한 겁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고무신이 등장하기 이전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떤 신발을 신고 다녔을까요. 대중용 신발의 주종을 이룬 것은 짚신과 나막신이었습니다. 특히 나막신은 바닥이 쉽게 닳지 않도록 바닥에 얇은 쇠붙이를 붙여 신고 다니기도 했죠.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그 국산 검정고무신을 가장 먼저 신어 본 사람이 누구였는지 아시나요.

조선의 마지막 임금이었던 순종이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나라의 임금님이 맨 처음 신어 봤을 정도로 검정고무신은, 그때는 아주 귀한 신발이었던 겁니다.

그러나 요즘은 운동화 한 켤레에 쌀 한두 가마 값이 나가는 비싼 외제 수입 운동화를 신고 다니는 젊은이들이 많습니다.

어쨌든 광복 직후 생활용품이 부족하던 시절에는 이 검정고무신까지도 배급을 받았다는 사실을 누가 알고 있을까요. 물건이 워낙 귀하다 보니까 다른 생활 용품들과 함께 신발도 배급을 받았던 거예요.

그 당시 신문에 실렸던 기사 한 줄.‘서울시청에서는 이번에 옷감과 설탕과 신발을 배급하기로 되었다. 신발은 여자용 고무신을 포함해 모두 3만 켤레이다.’

바로 약 60년 전 광복 직후, 우리들의 자화상이었던 겁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세상 살기 많이 좋아진 겁니다.
2006-10-26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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