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고 많은 나비들 중에 내가 정확히 이름을 불러줄 수 있는, 그런 나비는 얼마나 될까 모르겠네요. 노랑나비, 배추흰나비 그리고 호랑나비 이런 정도잖아요? 지금은 그 예전에 기억하고 있었던, 한번쯤 들어봤던 나비 이름들이 거의 다 머릿속에서 지워진 겁니다.
그러나 지난날 우리가 기억했던 나비 이름들, 곰곰이 다시한번 생각해보면 그 이름들이 얼마나 예뻤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그 날개빛이 마치 유리창처럼 투명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유리창나비’, 그리고 ‘굴뚝나비’‘물결나비’‘처녀나비’. 나비 이름이 얼마나 예쁩니까.
이들 가운데 ‘처녀나비’의 경우 크게는 ‘처녀나비’라 부르지만 세 종류로 나뉘게 됩니다.‘봄처녀나비’‘도시처녀 나비’‘시골처녀나비’.
어떠세요. 그 이름만 들어봐도 벌써 고향의 흙 내음이 물씬 코 끝에 묻어나는 그런 느낌이지요. 나풀나풀 봄바람 타고 금방이라도 우리 곁에 가까이 나타날 것 같지 않습니까. 나풀나풀 봄은 이렇게 나비와 함께 찾아오는가 봅니다.
그런데 앞에서 잠깐 얘기한 처녀나비. 처녀나비에는 모두 세 종류가 있다고 했잖아요. 봄처녀나비, 도시처녀나비 시골처녀나비. 이 가운데 먼저 봄처녀나비는 봄에 잠시 잠깐, 채 한 달도 안 되게 잠깐 모습을 보였다가 사라집니다. 나풀나풀 날아가는 그 모양이 꼭 수줍은 처녀 같은 느낌이거든요. 그래서 봄처녀나비라는 이름이 붙여진 겁니다. 이에 비해 도시처녀 나비는 색채가 진한 갈색. 빛깔부터가 개성이 강해요. 여기에다 또 앞뒤 날개 안쪽에 있는 흰 띠가 마치 도시처녀들이 잔뜩 멋을 부린 것 같고 말이죠. 그리고 시골처녀나비, 이 시골처녀나비는 그 노랑색이 마치 시골처녀의 노랑 저고리를 연상케 하고 있거든요. 거기다가 대부분 시골에서만 드문드문 발견이 되고 말입니다. 봄나비 하나에 붙여진 이름에도 이렇게 다 사연이 있답니다.
봄나비 얘길 하다보면 조선 순조 때 서울에서 태어나 고종 때 8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화가 중에 ‘남나비’라는 인물이 떠 오릅니다. 원래 본명은 ‘남계우’입니다.
살아생전에 ‘나비’그림을 수없이 그려 ‘남나비’라는 별명을 얻게 된 사람이지요. 그는 ‘당가지골’이라고 해서 현재의 한국은행 자리 바로 그 뒷동네에 살았습니다. 그가 16세 때 이런 일이 있었답니다. 자기 집에 날아든 나비 한 마리가 지금까지는 전혀 구경해보지 못한 그런 나비였거든요. 그래서 그 나비를 잡기 위해 십리길을 뛴 끝에 저 동소문 밖에까지 따라가서 그 나비를 잡아가지고 돌아왔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애써 잡은 나비들을 책갈피 속에 잘 넣어두고는 마음내킬 때마다 그 나비들을 꺼내서 그림으로 그렸고요. 그런데 이 ‘남계우’가 그린 나비 그림들을 조사해보면 모두 37종의 나비가 등장하고 있는데요, 이중에 눈에 띄는 것은 ‘남방공작 나비’와 ‘붉은점 모시나비’입니다. 이런걸 보면 ‘남계우’가 한창 나비 그림을 그리던 시절인 약 150년 전만 해도 우리 서울에서 ‘붉은점모시나비’와 ‘남방공작나비’가 살고 있었다는 증거가 되겠죠. 남방공작 나비는 나비 날개의 그 둥근 무늬가 꼭 공작새의 무늬를 연상케 하는 그런 나비거든요. 그 아름다운 나비들이 이제는 다 어디로 날아가 버렸는지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지금은 우리 서울에서 찾아보기 어렵게 된 ‘붉은점모시나비’나 ‘남방공작나비’들을 다시 만나보기 위해서라도 한 마리 작은 나비에 대한 관심, 지금보다 더 높여야겠습니다. 그러기 위해 한가지 기억해뒀으면 좋겠네요. 우리 서울에 ‘배추흰나비’가 나타나는 날짜가 언제인지. 예년 평균으로 볼 때 4월 초순입니다. 지금쯤 어디에선가 팔랑팔랑 가냘픈 날갯짓으로 우리에게 봄소식을 전하고 있을 겁니다. 틀림없습니다. 주변을 한번 둘러 보세요.
●심상덕선생은 1945년 인천에서 출생, 서라벌예술대학(현 중앙대학 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한 뒤 현재 방송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집필 작품으로는 KBS 제 2라디오 ‘가로수를 누비며’,KBS ‘세월따라 노래따라’ 등이 있으며, 현재 TBS(서울 교통방송) ‘서울이야기’와 TBN(전국 교통방송) ‘오승룡의 길따라 노래따라’를 집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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