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 제도가 국민 의료비 부담을 크게 낮추면서 우리나라 공공의료체계의 근간으로 자리매김했으나 올해 1조3천억원의 적자를 바라보는 건강보험 재정은 이 제도의 지속가능성을 시험대에 올려놓고 있다.
이렇게 간다면 세계에서 가장 빠른 우리나라 고령인구의 증가속도는 건강보험 재정의 적자폭을 계속 벌여놓을 것이 틀림없다.
진수희 보건복지부 장관도 이날 청와대 업무보고에서 “보건복지 정책은 향후 10년을 내다보면서 근본적인 패러다임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에 따라 보건복지부는 건강보험 가입자의 부담능력에 맞게 보험료 부과에 형평을 기하는 방향으로 먼저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의 첫 단추를 끼우기로 했다.
◇’무임승차‘ 고액 재산가 피부양자 제외=복지부는 내년도 업무계획에서 건강보험료를 부담할 능력이 되는 고액 재산가는 직장가입자에 딸린 피부양자라도 건강보험료를 부과하기로 했다.
그동안 피부양자는 재산과 연금소득이 아무리 높아도 사업·부동산 임대소득이 연간 500만원 이하이거나 이자·배당소득이 4천만원 이하이면 보험료를 내지 않았다.
복지부는 내년 상반기 중 종합부동산세 납부액 등을 기준으로 해 직장 피부양자에서 제외할 고액 재산가를 선정한 다음 이들을 지역가입자로 편입해 매월 건강보험료를 부과한다는 계획이다.
지난 5월 현재 직장가입자 피부양자 1천953만명 가운데 재산을 보유한 피부양자는 453만명에 이르고 있기 때문에 이중 적잖은 재력가가 보험료 납부 대상자가 될 전망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연간 연금수급액이 1천801만원 이상으로 월 연금수입이 150만원을 넘는 피부양자는 14만명으로 이들만이라도 건보 가입자로 편입하면 연간 1천32억원의 보험료를 더 걷을 수 있을 것으로 예측했다.
현재 우리나라 직장가입자 1인당 피부양자는 1.56명으로 프랑스(0.56명),일본(1.09명),독일(0.3∼0.7명),대만(0.72명)보다 훨씬 많아 보험재정 악화의 한 원인이 되고 있다.
◇고소득자 보험료 상한선 높인다=현재 직장가입자의 월 소득이 6천579만원이면 보험료는 350만6천600원(근로자몫은 175만3천300원)이고 그 이상으로 1억원을 벌든,10억원을 벌든 보험료 상한선에 걸려 보험료는 똑같아진다.
건강보험료 부과체계가 소득이 많을수록 세율이 높아지는 누진적 구조인 소득세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복지부는 형평성 제고 차원에서 내년 상반기 중 현재 평균 보험료의 24배인 건강보험료 상한선을 30배로 올려 부담능력에 비해 보험료를 적게 냈던 고소득자 2천171명의 보험료 부담액을 늘릴 방침이다.
내년 1월부터 건강보험료가 5.9% 인상돼 직장가입자의 월평균 보험료는 올해 7만4천543원에서 내년 7만8천941원으로,지역가입자는 6만9천687원에서 7만3천799원으로 오르게 된다.
이에 따라 평균보험료의 30배인 223만6천원이 직장가입자의 보험료 상한선이 된다.월 소득이 6천579만원에서 8천391만원에 이르는 고소득 직장가입자 2천156명의 보험료 부담이 최대 48만원 가량 늘어나는 셈이다.
마찬가지로 172만원이었던 지역가입자의 보험료 상한선은 209만원으로 늘어나게 된다.
◇불합리한 보험료 책정기준 문제는 손안대=복지부 업무계획에는 이밖에도 저소득 취약계층에는 여전히 부담인 건강보험료 문제도 포함하고 있다.
복지부는 내년 1월중 보험료 경감을 받을 수 있는 저소득층 대상을 확대키로 하고 보험료를 30% 경감받을 수 있는 대상자의 재산기준을 5천500만원에서 6천만원으로,20% 경감 대상자는 8천500만원에서 9천만원으로,10% 경감 대상자는 1억3천만원에서 1억3천500만원으로 낮추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전국 4만6천가구의 저소득 취약층이 연간 87억원의 보험료 경감혜택을 받게 된다.
아울러 화재,부도,압류 등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가구의 보험료 경감률을 20%에서 30%로 상향 조정키로 했다.
하지만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의 핵심이랄 수 있는 보험료 산정기준의 단일화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그동안 직장가입자의 보험료 기준을 근로소득 기준에서 임대 및 금융·이자 소득 등을 포함한 종합소득으로 변경하고 지역가입자는 소득 비중을 높이는 방향으로 보험료 책정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현행 보험료 산정체계는 직장 가입자는 근로소득에만 보험료를 부과하지만,지역가입자는 소득,재산,자동차,성,연령 등을 고려해 보험료를 부과하고 있어 여러 이해관계가 충돌한다.
직장가입자의 부수입이 아무리 많아도 근로소득만을 부과 기준으로 삼기 때문에 보험료에 적절히 반영되지 않고 있고 소득,집,자동차가 없는 서민 지역가입자는 전월세금을 이유로 보험료가 부과되는 불평등이 나타난다.
심지어 지역가입자의 위장취업 문제도 나타나고 있다.
실제 전체 직장가입자 1천162만명중 230만명이 근로소득 외의 소득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중 근로소득 외에 1억원 이상의 소득을 올리는 사람은 16만4천명에 이른다.
신영석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재 소득의 45% 정도가 보험료 부과대상에서 제외돼 있다”며 “근로소득만 부과대상으로 삼을 것이 아니라 연금 및 금융,임대소득,양도소득 등 기타 제반소득 등을 부과기반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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