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소개 및 판결의 요지>“금감원 고시에 위임입법한 것은 위헌” 주장… 헌재 “규제 내용 법률에 규정돼 있어 합헌”
판례의 재구성 29회에서는 행정규칙에 대한 위임입법을 제한적으로 인정한 헌법재판소 결정(99헌바91)을 소개한다. 헌재는 2004년 10월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에서 “헌법이 인정하고 있는 위임입법의 형식은 예시적인 것”이라며 “입법자가 상세한 규율이 불가능한 영역이라면 행정부에게 필요한 보충을 할 책임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헌재 결정에 대한 해설을 행정법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정호경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부터 듣는다.그렇다면 고시 등 헌법상 규정된 위임입법 외의 형태로도 입법이 가능할까. 이와 관련해 2004년 10월 헌법재판소는 “법률 조항에 고시를 따르도록 위임입법한 것은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당시 최순영 전 대한생명 회장 등이 “부실 금융기관으로 지정된 기관의 안정화를 위해 정부 개입을 허용하는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 관련 규정은 포괄위임입법 금지의 원칙에 반하고 제12조 2항 등은 주주의 권리를 박탈하는 규정으로 위헌”이라며 제기한 헌법소원 사건(99헌바91)에서 재판관 6대3 의견으로 합헌 결정했다.
최 전 회장은 1999년 금융감독위원회가 대한생명을 부실 금융기관으로 결정하고 기존 주식 전부를 소각하는 자본감소 명령을 내린 데 반발하면서 서울행정법원에 “금감위 처분을 취소하라”는 위헌제청 신청을 냈지만 각하되자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최 전 회장은 “법률 조항에 금감원 고시를 따르도록 위임입법한 것은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헌재는 결정문에서 “해당 법률 조항은 부실 금융기관을 결정할 때 부채와 자산의 평가 및 산정의 기준, 적정 조치의 기준과 내용에 관해 금감위 고시에 위임하고 있다”며 “입법위임된 사항은 전문적·기술적인 것으로 불가피하고, 금감위 고시로 규제될 내용 및 범위의 기본 사항이 법률 자체에 규정돼 있기 때문에 예측이 가능하다”고 판시했다. 포괄위임입법 금지 원칙에 위배되지 않아 합헌이라는 뜻이다. 헌재는 이어 “헌법이 인정하고 있는 위임입법의 형식은 예시적인 것으로 봐야 한다”면서 “형식의 선택과 관련해 입법자에게 상세한 규율이 불가능한 것으로 보이는 영역이라면 행정부에게 필요한 보충을 할 책임이 인정된다. 전문적인 식견에 좌우되는 영역에서는 행정기관에 의한 구체화가 불가피하다”며 행정규칙에 대한 위임입법이 제한적으로 인정될 수 있다고 봤다. 다만 “행정규칙은 법규명령과 같은 엄격한 제정 및 개정 절차를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재산권 등 기본권을 제한하는 작용을 하는 법률이 입법위임을 할 땐 대통령령, 총리령, 부령 등 법규명령에 위임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또 “금감위 고시와 같은 형식으로 입법위임을 할 땐 적어도 행정규제기본법 제4조 2항 단서에서 정한 대로 법령이 전문적·기술적 사항이나 경미한 사항으로서 업무의 성질상 위임이 불가피한 사항에 한정된다”며 “그러한 사항이라 해도 포괄위임 금지의 원칙상 법률의 위임은 반드시 구체적·개별적으로 한정된 사항에 대하여 행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권성·주선회·이상경 재판관은 “금감위의 고시에 따르도록 위임입법하는 것은 헌법에서 한정적으로 열거한 위임입법의 형식(대통령령·총리령·부령)을 따르지 않고 법률에서 임의로 위임입법의 형식을 창조한 것으로 위헌”이라며 반대 의견을 냈다. 이어 “사기업이 부실해지면 원칙적으로 파산 등 회사를 정리하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며 “국가가 매번 부실기업에 대해 국민의 세금으로 조성된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것을 규정한 법률 조항은 시장경제질서에 부합되지 않아 위헌”이라고 밝혔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2015-05-14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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