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번 무산됐던 고준위 방폐장 로드맵 발표
의견 수렴 거쳐 선정기간 12년으로호주 등 해외 대체지역도 추진
정부는 25일 ‘사용후핵연료’ 처분 로드맵을 발표하면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의 부지 선정 기간을 12년으로 잡았다. 이렇게 길게 설정한 데는 앞으로 심각한 갈등이 불거지고 주민 설득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반영돼 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갈등 요인을 최대한 줄여 나가겠다는 의도도 깔려 있다. 기간만 놓고 보면 공론화위원회 권고안(4년)보다 8년이나 길다. 이에 비해 영구처분시설 건설 기간은 권고안(31년)보다 7년 빠르다.
채희봉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자원실장은 이날 세종청사 브리핑에서 “부지 선정은 안전성과 주민 소통을 감안해 여유를 갖고 진행하고, 건설은 가능한 한 시간을 단축해 전체 기간으로는 권고안(35년)과 차이가 없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부지 선정 방식은 부적합 지역을 뺀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공모 형식으로 진행된다. 정부가 특정 지역을 직접 후보지로 지정하거나 당장 부지를 선정하는 것은 아니란 얘기다. 고준위보다 덜 위험한 ‘중·저준위’ 방폐장 부지를 선정하면서도 극심한 갈등을 경험했던 것이 감안됐다. 2005년 경북 경주가 공모를 통해 중·저준위 방폐장으로 선정되기 전까지 정부가 앞서 선정한 충남 안면도와 인천 굴업도, 전북 부안에서는 대규모 주민 소요 사태가 발생했다.
이런 점을 고려해 공모 외에도 신청한 지역의 주민 의사를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기로 했다. 단, 방식은 주민투표를 포함해 지자체가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이미 부지를 선정한 스웨덴은 여론조사로, 핀란드는 지방의회 동의로 주민 의견을 수렴했다.
고준위 방폐장 유치에 따른 인센티브도 제공된다. 정동희 산업부 원전산업정책관은 “이번 기본계획안에는 담겨 있지 않지만 부지 선정 절차에 들어가면 ‘지역 니즈’를 반영한 지원책을 내놓을 계획”이라면서 “기본적으로 공론화위원회 권고안에 제시된 ‘주민 참여 환경감시센터’ 설치와 유관 기관 유치, 처분 지원 수수료, 도시 개발 계획 등이 대거 포함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국내 부지 선정에 난항을 겪거나 해외 대체지(호주) 추진이 여의치 않을 경우 강제 조정에 나설 수 있는 길도 열어 놓았다. 원전별로 임시로 수용하고 있는 고준위 방폐물이 3년 후부터 포화 상태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이미 포화율 80%를 넘은 월성원전은 2019년부터 임시 저장이 불가능해진다. 한빛과 고리원전은 2024년, 한울원전은 2037년, 신월성원전은 2038년부터 포화율 100% 상태에 이른다. 사실상 부지가 순조롭게 선정된다고 하더라도 임시(건식)저장시설 확대는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다. 채 실장은 “공모 방식이 불가능해졌을 때 정부 직권으로 처리할 수도 있을 것”이라면서 “다만 그런 방식을 최대한 피해 지자체의 의견을 존중하겠다”고 밝혔다.
김용균 한양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포화 상태에 직면한 국내 원전 현실을 고민한 방안으로 보인다”면서도 “다만 집행 과정에서 상황 변화가 생길 수 있고, 추가해야 할 부분도 있는 만큼 최종 확정은 하지 말고 추가로 보완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박군철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고준위 방폐물의 해외 처분과 관련해 “그린피스의 반대도 있겠지만 핵폐기물은 쓰레기가 아니라 다시 재활용할 수 있는 부분도 있어 외국에 보내는 건 무책임하다”고 지적했다.
세종 김경두 기자 golders@seoul.co.kr
세종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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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원자로 연료로 사용된 뒤 배출되는 ‘사용후핵연료’다. 원전에서 사용한 장갑과 옷 등인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과 구별된다. 우라늄과 제논, 세슘, 플루토늄 등과 같은 맹독성 방사성물질을 포함한다. 강한 방사선과 높은 열을 방출하기 때문에 사람이 접근할 수 없고 영구적으로 폐기돼야 한다.
2016-05-26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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