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메트로폴리스들의 21세기 도시발전은 문화를 지렛대로 한 걸음 도약하는 것이다. 서울도 그 행렬에 한 발 담그고 싶은 욕망과 전략을 만들고 있다. 서울의 욕망과 희망이 뿌리내리기 위해 지금 이곳 서울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떻게 문화와 더불어 호흡하고 있는지, 사람들의 일상 속에 문화는 어떤 자리매김을 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문화도시란 도시발전 계획에 의해 가능한 것이 아니라 문화를 소비하는 사람들이 듣고, 보고, 만져본 그 경험의 축적에 의해 한 뼘씩 깊어지며 뿌리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대중문화소비의 일상화, 대중영화
서울시민들에게 가장 익숙한 문화소비는 단연 대중 영화 관람이다. 서울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지난 1년 동안 3.03편의 영화를 보았다. 물론 아직도 전체 시민의 50%는 영화를 한편도 보지 않는 것으로 조사되었지만, 뒤집어보면 전체 시민의 반수가 1년에 한 편 이상의 영화를 보았다는 것이다. 또한 영화를 한번 이상 본 사람들의 평균관람 횟수는 6편이나 된다. 이는 서울의 충무로가 시민들의 삶 속에 낯설지 않은 일부분으로 자리잡은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다수 시민의 문화소비가 영화산업의 굳건한 버팀이었음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대중영화의 소비는 서울시민의 성별이나 나이에 따라 차별되지 않은 채 모든 사람들이 즐기는 하나의 문화코드이다.
서울시민 가운데 여성의 연평균 영화관람 횟수는 3.27편이며, 남성은 2.78편이다. 대중영화 소비의 중심축은 20대에 있다. 서울시 20대의 연평균 영화관람 횟수는 7.54편으로,10대의 5.54편,30대의 3.0편에 훨씬 앞서 있다.20대 중 지난 1년 동안 영화를 한편도 안본 비율은 18%에 지나지 않는다.50대이상 연령층에서는 그러한 비율이 71%나 되는데 말이다. 나이가 많은 시민들은 대중 영화라는 상대적으로 가장 대중적인 문화소비에서도 빗겨나 있다.
●순수문화 소비 걸음마 단계
그러면 서울시민들이 순수문화 소비에는 어느 정도의 눈길을 주고 있는 것일까. 서울시민들은 인사동뿐 아니라 세검정 고개를 넘으면 하늘과 맞닿을 듯한 언덕 위 평창동에 아주 많은 미술관이 모여 있다는 것을, 그리고 도심 한가운데 광화문 가까운 곳에 이 가을 낙엽이 사각거리는 더없이 행복한 오솔길이 있는 미술관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2004년 미술관을 찾은 서울 시민은 전체 시민의 11.8%에 지나지 않았다. 연간 미술관 관람은 0.34회이다. 남성들의 90%는 미술관을 한번도 찾지 않았으며, 대중영화 소비에 익숙한 20대 역시 84%가 지난 한해동안 미술관을 찾은 경험이 전무하였다.
가구소득이 200만원에서 300만원 사이의 중간계층이 지난해 미술관 관람을 위해 지불한 비용은 2만 6000원이다.
연주회나 무용·연극 등 순수공연장의 상황은 어떠할까. 서울시민의 87%는 2004년 한해 순수예술 공연장을 한번도 찾지 않았으며, 연간 0.36회의 순수예술 공연장을 방문하였다.
이러한 순수공연예술 경험률은 성별·연령별로 다르지 않다. 남녀 모두 10명 가운데 8명 정도가 공연장을 가본 경험이 없으며,30대의 85%,40대의 87%,50대의 90%는 순수 공연장 근처에도 가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문화소비와 경제력
문화소비에는 돈이 많이 들까. 순수예술을 소비하지 않는 사람들은 공연료가 비싸다고 한다. 가구소득 기준 200만∼300만원인 계층의 평균 공연장 방문 횟수는 0.33회,400만∼500만원 계층은 0.59회,500만원 이상 계층은 0.84회이다.
가구소득 100만원 미만 계층의 93%는 공연장에 가본 적이 없다. 미술관 관람 횟수 역시 200만∼300만원 가구소득 계층은 0.22회,500만원 이상 소득계층은 0.77회이다.
경제력과 문화소비간에는 분명 차이가 있다. 그러나 아주 큰 차이는 아니다.200만∼300만원 소득가구은 연간 공연에 5만 9000원을 지출하였다.400만∼500만원 소득계층은 7만 9000원을 썼다.2004년 발표 기준 서울시민의 평균 외식비는 20여만원이 넘는다고 하는데 서울에 사는 우리들은 여전히 먹는 데 더 집중하고 있다.
●문화소비의 저변 확대를 위한 노력
문화란 경험한 만큼 알게 되고, 아는 만큼 보이고 들린다고 한다. 익숙하지 않은 것은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많은 시민들이 대중문화에도 익숙해지고 순수문화예술도 경험하도록 장(場)을 마련해야 한다.
서울시는 2005년을 ‘문화의 해’로 선포했다. 노들섬에 오페라극장 건립을 위한 설계안이 화려한 모습을 드러내고, 서울광장에서는 마에스트로 정명훈이 베토벤을 들려준다. 오가는 사람들은 순수예술에 귀를 열게 된다. 영화관의 낮은 문턱만큼 순수예술의 문턱도 낮아져야 한다. 문화는 편식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문화도시 서울의 꿈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다양한 장르의 각양의 문화들이 함께 소비되어야 한다. 문화도시를 지향하는 서울시의 노력과 문화적 감수성을 높이려는 시민의 노력이 함께 할 때 가능한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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