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장애인 첫 5급 특채 합격한 지정훈씨
“박사 과정에서 힘들여 쌓은 지식을 공무원이란 이름을 달고 다른 이들을 위해 쓰고 싶습니다.”청년은 자신의 포부를 또박또박 말했다. 정부의 중증장애인 공무원 특채에서 처음으로 5급 합격자가 탄생했다. 주인공은 지체장애 3급으로 올해 컴퓨터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지정훈(31)씨. 2008년 이 제도 시행 이후 5급 합격자가 나오기는 처음이다.
지씨는 부산에서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뇌성마비를 앓은 이후 다섯 살 때까지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 하지만 피나는 재활치료를 거쳐 불편한 손을 대신해 줄 자판과 마우스 쓰는 연습을 했고 컴퓨터를 자유자재로 다루게 됐다. “오는 12월 특허청 정보통신국에서 심사관으로 근무할 날을 그리면 가슴이 두근거린다.”는 그는 험난한 취업 관문을 뚫고 기뻐하는, 영락없는 보통 청년이었다.
‘장애 3급’은 그를 설명하는 여러 꼬리표 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의 인생에서 ‘특채’는 처음이다. 입시도, 대학공부도 일반인들처럼 혹독하게 치러냈다. “몸이 조금 불편할 뿐 특별 대접을 받아 본 적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1998년 입학한 부산 경성대 컴퓨터공학과도 일반전형이었다. 박사과정도 지도교수 휘하 첫 제자여서 엄격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 2005년 박사과정에 들어가 지난 8월에야 논문이 통과됐다.
지씨의 박사학위 논문은 ‘적응적 서열 정렬기법을 이용한 프로그램 유사도 탐색’. “2개의 소프트웨어 사이의 유사도를 기계적으로 검사하는 분야”라고 소개했다. 예컨대 2개의 리포트가 서로 베낀 것인지 알아내거나 특허를 도용한 프로그램을 적발하는 데 쓰일 수 있다고 한다. 앞으로 수행할 특허청 심사관 업무와도 상통한다.
지씨가 처음부터 공무원 분야에 관심을 가졌던 건 아니다. 하지만 자신이 힘들게 배운 것을 타인을 위해 쓰고 싶다는 생각을 자연히 갖게 됐다. 부산시교육청 산하 정보영재교육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쳐 온 것도 그런 생각의 발로였다.
그동안 행안부는 부처별 중증장애인 인력 수요를 취합해 일괄 특채를 해 왔다. 올해는 13개 부처 14명(5급 1명, 7급 3명, 9급 8명, 연구사 1명, 기능직 10급 1명)이 최종 합격했다. 특히 5급 특채는 2008년 2명, 지난해 1명의 수요가 생겼지만 서류·면접 과정의 벽을 넘지 못했다. 올해는 특허청 2명 선발에 총 4명이 지원했지만 지씨만 최종 합격했다.
그는 정부에 중증장애인 쿼터제 문호를 좀 더 열어 달라는 바람도 전했다. “장애인은 비장애인보다 인내력이 더 뛰어난 경우가 많으니 미리 재단하고 바라보지 마라.”고 주문했다. 이어 “정부의 장애인 채용이 대부분 경증 위주로 이뤄진다.”면서 “정부가 중증장애인도 할 수 있는 업무를 발굴해 더 많은 장애인이 공직 분야에 진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조윤명 행안부 인사실장도 “장애인에게 적합한 직무를 적극 찾아내고 근무여건을 개선하는 등 정책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2010-09-15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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