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수건 쥐어짜듯’ 절전으로 극복…국민·산업계 도움 커
“1차 고비는 넘겼지만 9월 중순까지는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12∼14일 2011년 9·15 전력대란 이후 최악의 전력난이 예고됐지만 ‘마른 수건 짜내는’ 극단적인 절전 시책으로 일단 한숨 돌릴 수 있게 됐다.
특히 불볕더위 속에 불편함을 감수하고 절전에 적극 협조한 산업계와 일반 국민이 이번 고비 극복의 일등공신으로 꼽힌다.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은 껐지만 전력위기가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다. 전력당국 내부적으로는 “이번 달보다는 다음달이 더 문제”라는 말도 나온다.
내달 중순까지 늦더위가 기승을 부릴 것으로 예보된 가운데 절전규제 등 일부 수요관리 수단이 빠지면서 수급대책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 ‘전력 위기’ 긴박했던 사흘…산업계·국민이 ‘공신’
전력당국은 애초 전력대란 가능성이 가장 큰 시기를 8월 셋째 주로 보고 긴급 수급대책을 수립해왔다.
절정에 달하는 폭염 속에 산업체 상당수가 휴가를 마무리하고 정상조업을 시작하는데다 일선 학교도 방학을 마치고 수업에 들어가 전력수요가 극에 달할 수 있다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가장 위험한 시기가 12∼14일 사흘간이었다.
원전비리로 원전 3기(공급력 300만kW)가 가동을 중단하면서 공급력이 최대 7천800만kW 안팎으로 쪼그라든 가운데 수요가 갑자기 폭증할 경우 ‘9·15 전력대란’ 때처럼 ‘순환단전’까지 갈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했다.
주무부처인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11일 전력 유관기관장을 전원 한자리에 모아 긴급 수급대책회의를 하고서는 절전을 호소하는 대국민 담화를 발표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였다.
이런 비상상황에서 윤 장관의 담화 직후인 11일 밤 당진복합화력발전소 3호기(공급력 50만kW)에 이어 12일 오전에는 서천화력발전소 2호기(공급력 20만kW)마저 고장으로 가동을 멈추면서 최악의 시나리오가 임박한 듯 보였다.
이때는 전력당국 실무자들 사이에서 “순환단전을 준비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흘러나오기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자 전혀 의외의 상황이 펼쳐졌다.
전력위기 첫 날인 12일 오전 한때 예비력 380만kW를 기록한 이래 사흘간 한 번도 예비력이 400만kW 밑으로 내려가지 않았다.
새벽 예보 기준으로 12∼13일은 최저 예비력이 160만kW로 수급경보 4단계인 ‘경계’가, 14일에는 382만kW로 2단계인 ‘관심’이 발령될 것으로 예보됐으나 사흘 모두 ‘준비’ 단계에서 더 악화하지 않았다.
오후 2∼3시 피크시간대 평균 예비력도 12일 442만kW, 13일 440만kW, 14일 508만KW로 올해 못지않게 수급 상황이 좋지 않았던 작년 같은 기간 수준을 웃돌았다.
전력당국은 “산업계와 국민이 적극적으로 절전 시책에 따라줘 전력대란을 피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공공기관이 냉방기기 가동을 전면 중단하는 등 절전에 적극 동참했고 절전 규제, 산업체 조업조정 등 일선 기업의 협조가 필요한 수요관리 실적도 목표를 크게 상회했다.
정확한 집계는 어렵지만 일반 가정·상가 등에서 자발적으로 시행한 ‘보이지 않는’ 절전 규모가 200만kW에 달한다는 평가도 전력당국 내부에서 흘러나왔다.
산업계와 국민이 국가비상사태 국면에서 불편과 금전적 피해를 감수하고 적극적으로 절전 노력을 기울인 것이 전력 위기 극복의 원동력이 됐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잘못은 정부가 하고 그 고통을 왜 국민만 짊어져야 하느냐’는 분노 섞인 비판도 비등하다.
전력당국의 한 관계자는 “국민의 분노를 충분히 이해하고 겸허히 새겨듣겠다”며 “일단 급한 불을 끈만큼 중장기 수급 계획을 충실하게 세워 다시는 국민 앞에서 절전을 호소하는 일이 없도록 준비하겠다”고 약속했다.
◇ 늦더위 지속하는 9월이 ‘복병’…”긴장 끈 놓지 말아야”
”전 국민이 단결해 준비하면 8월 중 전력 위기는 그럭저럭 넘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문제는 9월이다. 넋놓고 있다가 한번에 갈 수 있다”
지난 5월 원전비리로 원전 3기 가동이 정지되면서 여름철 ‘9·15 전력대란에 버금가는 최악의 위기가 닥칠 것’이라는 얘기가 공공연히 나돌던 6월 말께 산업부 관계자가 한 말이다.
이는 사실상 위기의 무게 중심이 8월보다는 9월에 가 있다는 얘기다. 실제 전력당국도 8월의 비상 수요관리 대책의 골격을 마무리 짓자마자 바로 9월 수급대책 수립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그 배경에는 ‘9·15 전력대란’의 트라우마가 작용한다. 8월 여름철 전력난을 넘기자마자 발전기들이 대거 정비에 들어간 상황에서 9월 중순 무더위로 갑자기 전력수요가 폭증하면서 결국 예고 없는 순환단전까지 갔다.
여름 수급난을 이겨낸 뒤 긴장이 풀리면서 비상상황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했다는 얘기도 나왔다.
이를 기억하는 전력당국자들은 9월을 전력수급의 마지막 ‘복병’으로 보고 여름 피크기간에 준하는 수급대책을 세워왔다.
기상청은 내달 중순까지 30도를 웃도는 늦더위가 기승을 부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기상청 관계자는 “지금처럼 폭염 수준은 아니지만 예년보다는 기온이 높을 것으로 보인다”며 “최소한 내달 중순까지는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계약전력 5천kW 이상 기업체를 대상으로 3∼15%의 전력을 의무적으로 줄이도록 한 절전규제가 이달 30일로 종료되는 것도 내달 수급 전망을 불투명하게 하는 요인이다.
여름철 대표적인 수요관리 수단으로 자리잡은 절전규제는 지난 5일부터 시행돼 예비력 400만kW를 유지하는 파수꾼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통상 절전규제로 추가 확보할 수 있는 전력량을 230만kW로 잡지만 12일 323만kW, 13일 301만kW, 14일 300만kW로 기대치를 웃도는 실적을 냈다. 이 기간 수요관리로 확보한 총 전력량의 절반을 넘는 것이다.
아울러 여름휴가 기간을 조정해 전력소비를 줄이는 산업체 조업조정도 9월에는 활용하기가 힘들다. 산업체 조업조정은 이번 전력 위기 기간에 150만kW 안팎의 전력량을 담당했다.
전력당국은 올해 9월 평균 최대 전력수요를 7천200만kW, 예비력은 550만kW 정도로 보고 있다. 불시에 발전기 1∼2대가 고장날 수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결코 안심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다만 비상시 수요자원시장, 석탄발전기 최대 출력 가동, 전압 하향조정 등 규모는 작지만 여전히 활용 가능한 비상수단이 있고 내달 중 고리원자력 1호기(공급력 59만kW) 등 138만kW의 전력이 추가 병입되는 점은 그나마 위안이다.
전력거래소의 한 관계자는 “9월 전력수급이 순탄하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비관적으로만 볼 것도 아니다”며 “발전기 관리는 물론 각종 수급대책을 적시에 쓸 수 있도록 준비해 다시 전력위기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