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단어의 편지 ‘밸푸어선언’
밸푸어 사진 들고 항의한 팔레스타인 주민들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2017년 11월 가자시티에 있는 유엔 중동평화프로세스 특별조정관 사무실 앞에서 붉은 X자 표시를 한 아서 밸푸어 전 영국 외무장관 사진과 ‘팔레스타인인도 사람이다’라는 문구가 들어간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다. 밸푸어 전 장관은 1917년 영국의 유대인 부호이자 지도자인 월터 로스차일드에게 유대국가 건설을 지지하는 서한 ‘밸푸어선언’을 보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 씨앗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가자시티 AP 뉴시스 |
100년 넘게 이어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은 1917년 ‘밸푸어선언’에서 비롯됐다.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7년 11월 영국의 외무장관 아서 밸푸어는 유대인 부호이자 지도자인 월터 로스차일드에게 67단어로 이뤄진 편지를 보냈다. “영국 정부는 팔레스타인 땅에 ‘유대인을 위한 민족의 집’을 세울 것을 지지하며, 이 목표의 달성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유대인들에게는 사실상 ‘땅문서’와 같은 효력을 갖는 것으로, 건국운동을 주도하는 유대 시온주의자들을 크게 고무시켰다. 반면 불과 2년 전인 1915년 ‘후사인·맥마흔 서한’을 통해 영국으로부터 아랍국가 수립을 인정받았다고 생각한 팔레스타인인들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영국은 당시 적국인 오스만제국을 견제하기 위해 아랍인들에게 손을 내밀었으나 1916년에는 중동 지역을 프랑스와 나눠 통치하는 내용을 담은 비밀 합의 사이크스·피코 협정을 맺으며 배신했다. 1차 세계대전에서 전쟁 비용 조달에 허덕이던 영국은 이후 부유한 유대인들과 손잡게 된다. 그 결과가 밸푸어선언인 것이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중 계약”이라고 반발했으나 밸푸어선언 31년 뒤인 1948년 5월 실제로 이스라엘이 건국된다.
이재연 기자
2025-09-23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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