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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 서울에는 시티투어버스가 운행되고 있잖아요. 경복궁 같은 궁궐과 남산의 서울 타워, 인사동, 남산골 한옥마을, 그리고 동대문, 남대문, 명동같은 유명한 쇼핑타운까지 모두 시티투어코스에 담겨 있습니다. 시티투어버스 덕택에 편안한 서울 여행이 가능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세월을 거슬러 거슬러 올라가 1931년. 지금으로부터 70여년전 우리나라에 관광버스가 처음 선을 보였었는데요. 그 버스회사 이름이 ‘경성 유람 합승자동차회사’였고 16인승 버스 4대로 서울시내 명승고적지를 두루두루 돌아보는 관광버스였던 겁니다.

그 당시 관광코스는 남산으로 해서 장충단공원, 그리고 당시 창경원으로 불리던 창경궁, 또 파고다공원과 한강 등과 함께 차에서 내려 구경하는 곳이 13곳이었습니다. 그리고 남대문, 동대문, 서대문, 서울 운동장, 서울대학병원, 보신각, 경복궁, 조선호텔 등 모두 20곳은 관광버스에 탄 채 구경을 했습니다.




그 시절 그 관광버스 요금이 얼마였는지 아십니까. 어른은 2원 20전이었습니다. 그 당시 쌀 한가마니에 15원 정도였으니까 쌀 두어말은 내다 팔아야 그 관광버스 한번 타 볼 수 있었거든요. 그 시대의 경제 형편으론 아주 비싼 값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시절엔 한번 탑승하는데 쌀 두어말 값을 치러야 하는 그 관광버스가 아니라 해도 서울에서 시내버스 한번 타보는 것이 소원이었던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우리 서울에서 가장 인기 있는 직업이 어떤 직업이었었는지 아시겠죠.

‘여기는 종로거리올시다∼.’

‘내리실 분은 앞으로 나오세요∼.’

‘여기는 종로거리올시다∼.’

선망의 대상이었던 목소리의 주인공은 버스차장이었습니다.

그 무렵 서울 시내버스 여차장의 나이는 열여섯살에서 스무살 사이가 가장 많았었고 이들이 입었던 옷차림은 꼭 구세군이 입는 유니폼 비슷한 것이었는데, 당시로서는 이 옷차림이 여간 멋진 게 아니었습니다. 이런 옷차림은 난생 처음 보는 신식 옷차림이었거든요.

여기다 또 혀끝이 살짝 돌아가는 듯한 억양으로 ‘여기는 종로거리올시다∼.’‘내리실 분은 앞으로 나오세요∼.’라고 외치는 모습이 아주 매력적이었습니다.

서울 시내버스를 한 번 타고난 다음에는 밤잠을 못자는 총각들이 많았습니다.1930년대 이 무렵만해도 우리 서울의 버스 여차장은 불과 마흔 여덟명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들 여차장은 집에서 출퇴근을 하는 게 아니라 그 옛날 ‘구 한국 군대’의 ‘훈련원’이 있던 자리. 다시 말해서 지금의 을지로 6가쪽 국립의료원 일대가 되겠습니다만, 여기에 버스 차고지와 함께 여차장 숙소도 있었고 말이죠. 그 곳이 바로 ‘부영버스 차고지’였습니다.

그런데 버스 여차장들 인기가 워낙 좋다 보니까 그 신식 제복을 입은 버스 여차장들이 모여 기숙 생활을 하고 있는 모습을 한번 구경해 보고 싶어 시골에서 서울 구경 온 사람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관광명소가 되다시피 했던 겁니다.

그리고 초창기 버스 여차장들은 하루 아홉시간 근무에 하루 40전, 한달이면 12원의 월급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런데도 여차장들의 씀씀이가 무척 헤프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습니다. 그 정도로 돈을 잘 썼다는 거죠. 이게 무슨 얘기인가 하면요, 그걸 음성 수입이라고 해야 할까요. 당시의 버스 여차장들은 늘 현금을 취급하다 보니까 ‘은근 슬쩍’하는 그런게 있었나 봅니다. 그래서 한달 월급은 12원이지만 평균 40원 정도의 수입이 보장된다는 소문까지 나돌 정도였고, 그래서 그 시절 우리서울의 버스여차장이 더 인기가 있었다는 겁니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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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제공 : 정책브리핑 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