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자촌 출신 재개발 민원 해결사
1968년 겨울, 밤기차를 타고 12시간만에 도착한 서울역 광장의 새벽바람은 매섭기만 했다. 어머니 손에 이끌려 아버지가 터 잡은 서빙고동 단칸방을 찾아가는 길. 소년의 눈 앞에 펼쳐진 서울은 판잣집과 미로가 뒤엉킨 ‘슬럼(slum)의 바다’였다.39년 뒤 소년은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도시공간을 디자인하는 ‘도시계획기술사’가 됐다. 전국을 통틀어 300명밖에 없다는 도시설계 ‘명장(名匠)’이다. 관악구청 이민래(54) 도시관리과장 얘기다.
도시 리모델링이 한창인 관악구에서 사람들은 그를 ‘개발민원 해결사’라고 부른다.2006년 9월 부임한 뒤 20년 넘게 답보상태에 있던 신림7동과 봉천8동의 무허가 건물 정비사업을 해결했다.
“가난한 집 속내는 가난했던 사람만이 안다고, 재개발 민원도 ‘당하는’ 입장에서 접근하지 않으면 해결이 어렵습니다.”
실제 마지막까지 이주를 거부하던 난곡의 무허가 건물주와 세입자 98명은 그의 집요한 설득에 하나둘 설복됐다. 봉천8동의 120가구도 그랬다.
“무허가 셋방살이 경력이 15년이다. 머리 맞대고 살 길을 함께 찾아보자.”는 인간적 호소가 주효했다.
달동네 주민에 대한 그의 애정은 유별나다. 지난 연말엔 부서 성과급 50만원에 부서원들 정성을 모아 신림동의 조손(祖孫)가정 10곳에 10만원씩 전달하기도 했다. 도시계획이 직업이지만 역설적이게도 ‘재개발 없는 도시’를 꿈꾼다. 인간을 위한 도시라면 약자 희생이 불가피한 ‘건설을 위한 파괴’는 최소화해야 한다는 게 지론인 까닭이다. 일주일에 6시간씩 대학 강단에도 선다. 야간대학과 대학원을 다니며 습득한 도시론에 행정경험을 접합한 ‘현실주의적 이상도시론’을 펼쳐 보겠다는 포부도 숨기지 않는다.
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2008-1-18 0:0: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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