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계곡 ‘왁자지껄’
오후 1시. 살인적인 폭염에 땀은 속수무책으로 흘러내렸다. 바람 한 점 없는 시청앞 가로변의 대기 온도는 한껏 달궈진 아스팔트 복사열로 체온보다 높은 섭씨 37도를 기록하고 있었다. 지하철 시청역을 떠난 지 1시간 만에 도착한 관악산 계곡. 전혀 다른 별세계가 펼쳐졌다. 이곳이 과연 서울인가. 감탄이 절로 나왔다. 서울대 정문옆 ‘관문’을 지나 우거진 나무 터널을 느긋하게 걸어가기를 20여분. 물 소리와 요란한 매미울음에 섞여 아이들의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계곡 전체에 가득했다.●탁족하던 개울물이 자연형 수영장으로
관악산이 피서지와 자연학습장을 겸한 여름철 가족휴양지로 새롭게 태어났다. 관악구가 계곡 초입에서 상류 쪽으로 1㎞에 이르는 구간에 3곳의 보(洑)를 설치해 지역민의 여름철 피서지로 인기를 끌고 있는 것. 수량이 적어 기껏 탁족(濯足)이나 즐기던 공간이 어른 허리까지 물이 차는 ‘자연형 수영장’으로 거듭난 덕분이다.
8일 오후 아내·아들과 함께 계곡을 찾은 이창진(36·신림4동)씨는 “인파와 바가지 요금에 시달릴 걱정도 없고 집에서도 가까워 최고의 여름 휴가지”라면서 “골치아픈 피서 고민을 관악산이 해결해 줬다.”고 말했다.
딸과 사위, 세 손자와 함께 나온 정하순(63·신림3동)씨는 “좋은 위치를 잡으려면 서둘러야 한다.”면서 “이른 아침을 먹고 9시쯤 계곡에 나오면 나무 그늘 아래 널찍한 자리를 골라잡을 수 있다.”고 귀띔했다. 관악구에 따르면 물놀이장 개장 뒤 이곳을 찾는 피서객은 하루 평균 2000여명에 달한다.
●물놀이 뒤엔 농촌체험 ‘꿩먹고 알먹기’
같은 시각 계곡 동측 개활지에 1000㎡ 규모로 마련된 농촌체험장에서는 초등학생들의 ‘우리 동·식물 배우기’가 한창이다. 이곳에는 토란·꽈리·오이·고구마·고추 등 32가지 농작물이 심어져 있다.
생태해설사 박관영(76)씨를 따라 가지밭을 둘러보던 아이들은 돌연 무당벌레를 발견하곤 환호성을 지른다.
“선생님, 무당벌레는 해충이 아니라 이로운 곤충이죠?”
양상훈(12)군이 제법 똘똘한 질문을 던져보지만 돌아오는 것은 전혀 뜻밖의 답변이다.
“가지밭에 사는 무당벌레는 진딧물뿐만 아니라 잎까지 갉아 먹기 때문에 해충이야. 무당벌레가 이로운 벌레라는 것도 편견인 거지.”
구청 소식지를 보고 학습장을 찾았다는 박미자(37·봉천11동)씨는 “아들과 물놀이를 마치고 가는 길에 들렀다.”면서 “자연 속에서 휴식과 학습을 동시에 할 수 있어 도시 서민들의 피서지로는 그만”이라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한 나절 물놀이에 새까맣게 그을린 아이들의 맑은 미소 사이로 관악산의 여름도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2008-8-12 0:0: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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