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맹 할아버지 IT 강사되셨네
“오늘은 한글 프로그램 중에서 글자 스타일 바꾸는 방법을 배울 겁니다. 여기 이 문장을 드래그(drag)한 다음 마우스 오른쪽을 클릭하시고….” 지난 6일 오후 마포구 성산2동 대우경로당. 머리가 희끗한 최윤기(76) 할아버지가 강사의 설명을 들으며 독수리 타법으로 열심히 자판을 두드렸다. 강사 역시 나이 지긋한 김정오(78) 할아버지다.돋보기를 눌러쓴 김 할아버지는 수강생인 최 할아버지와 불과 두살 차이다. 김 할아버지는 이날 최 할아버지에게 1시간가량 글씨 크기 바꾸는 법, 문자색 변환 등을 5~6번씩 반복해 가며 가르쳤다. 사실 강사인 김 할아버지도 4년 전까지는 인터넷의 인자도 모르던 ‘컴맹’이었다. 그랬던 김 할아버지가 컴퓨터 강사로 바뀔 수 있었던 것은 바로 2005년 마포구가 운영했던 ‘구민 정보화 교육’ 덕분. 그는 3개월 간 진행된 교육기간 하루도 빠짐없이 강의를 녹음해 가며 컴퓨터 공부에 집중했다. 그 결과 지난해 10월엔 마포구 ‘구민 정보화 교육생 경진대회’에서 어르신 부문 최우수상을 받았다. 이제 그는 친구들 사이에서 ‘컴퓨터 도사’로, 지역 내 경로당에선 소문난 컴퓨터 강사로 통한다.
●월 20만원 강사료 받아
지난달부터 2주간 교육을 받은 최 할아버지도 이젠 이메일을 매일 확인하는 수준에 도달했다. 예전엔 일일이 손으로 작성해 방문·제출했던 노인회 경로당 회원 명단도 지금은 한글 프로그램으로 작성해 이메일로 직접 보낸다. 그는 “컴퓨터를 배우고 세상이 더 넓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교육이 끝나면 내가 배운 것처럼 다른 노인들을 가르쳐 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처럼 마포구 경로당이 때아닌 ‘컴퓨터 삼매경’에 빠졌다. 마포구가 지난 4월부터 대표적 정보 소외계층인 노인들을 대상으로 ‘경로당 컴퓨터 교실’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구는 지난해까지 지역내 경로당 70곳에 서울 정보기술(IT)희망나눔뱅크로부터 지원받은 중고 PC를 전달했다. KT신촌지사를 통해 인터넷도 설치했다.
●10월까지 70개 경로당서 컴퓨터 교실
구는 또 올 초 경로당 컴퓨터교실 강사로 활동할 60세 이상 노인 30명을 모집, 지난 3월까지 2개월간 인터넷 기초, 문서 편집, 한글 작성 등 컴퓨터 기초이론 등을 강의했다. 구가 2005년부터 운영한 노인 정보화교육을 1~2년간 받았던 노인 가운데 28명이 컴퓨터 강사 교육을 받았다.
노인 컴퓨터 강사들은 10월까지 경로당 1곳을 맡아 2개월 간 순회 강의를 한다. 주 3회 2시간가량 교육하며, 월 20만원의 강사료도 받는다. 구는 현재 주로 경로당·자치위원회장 등을 위주로 강의하지만, 차차 교육 대상을 넓혀 나갈 계획이다. 10월엔 경로당 컴퓨터 교실 수강생들을 대상으로 정보화 경진대회도 열기로 했다.
신영섭 구청장은 “비슷한 나이대의 강사가 경로당에서 눈높이에 맞게 컴퓨터 교육을 해주기 때문에 이해도 빠르고 자극도 돼 교육효과가 더 높다.”면서 “경로당 내 새로운 IT 문화를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컴퓨터 교실 사업을 계속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백민경기자 white@seoul.co.kr
2009-5-8 0:0:0 28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