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컴(Welcome). 아유레디(Are you ready)~ 렛츠 꼬우(Let´s go)~ 오 마이 갓(Oh my god)! 릴렉스(relax). 헬프 미(Help me). 오케이(OK)? 땡큐(Thank you)”
영어문장만 가득한 것이 회화시간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앞의 문장은 지난주 방송프로그램의 자막 일부를 짜깁기해놓은 것이다. 그것도 MBC〈무한도전〉, KBS〈1박2일〉, SBS〈정글의 법칙〉 등 지상파방송 3사에서 가장 시청률이 높게 나오는 예능에 등장한 말이다. 한 시간 동안 외래어와 외국어(중복․고유명사․노래가사 제외)의 등장은 〈무한도전〉87건, 〈1박2일〉82건, 〈정글의 법칙〉61건에 달했다. 이중 44.8%(103건)는 국립국어원에서 제공하는 표준국어대사전에도 등록되지 않은 단어다. 충분히 대체가능한 국어가 있어서 널리 쓰이지 않는 외국말이다.
이러한 방송언어가 문제가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청소년에게 영향을 준다는 점이다. 청소년 100명을 대상으로 직접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방송에서 쓰이는 언어가 자신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답한 수(69명)는 그렇지 않은 사람(13명)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들 중 40% 정도는 방송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를 일상에서 사용한다고 했다. ‘비주얼’ ‘멘탈’ ‘리액션’ 같은 외국어는 뜻도 제대로 모르는 채 쓴다는 이도 있었다.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을 통해 법률로 정한 ‘신중한 외국어 사용’을 무시한 대가는 이렇게 나타난다.
방송에서 외국말이 쓰이는 광경을 보며 안타까웠던 점은 우리말을 쓰려는 방송제작자의 의지가 부재했다는 사실이다. 출연진이 외국어를 사용하더라도 제작자는 자막으로 국어순화의 모범을 보여야 한다. 하지만 시정은커녕 오히려 외국어 남발에 앞장섰다. 웃기고 멋있는 상황이 연출될 때는 자막에 외국어가 꼭 끼어들었다. 프랑스 시청각최고위원회(우리나라의 방송통신위원회 격) 위원인 파트리스 젤리네는 “외국어를 쓰는 게 더 근사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일종의 속물근성”이라며 자국 방송에 일침을 가했다. 방송사들은 국어순화에 대한 책임의식을 상기해야 한다. 외국어로 방송을 포장해야 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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