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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한국은행은 1909년 11월 일본 통감부와 대한제국 간 협정에 따라 한국은행으로 발족했다. 이후 한일병합을 거치면서 1911년 8월 조선은행법이 제정됐고 ‘조선은행’으로 이름을 바꿨다.


그러나 당시 조선은행은 중앙은행의 역할을 맡았다기보단 은행권을 남발해 일본의 전비를 지원하는 게 주요 업무였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되자 미 군정은 조선은행에 중앙은행 고유 업무를 부여했다. 그러나 경제상황이 좋지 않은 탓에 막대한 재정적자에 시달려야 했다. 오늘날 한국은행의 모습은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뒤부터 갖춰지기 시작했다. 미국 등 도움으로 1950년 2월에야 중앙은행 개편안이 확정됐고, 그해 5월 ‘한국은행법’이 제정·공포돼 6월 12일부터 업무에 나섰다. 사진은 1912년 지어진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관(옛 조선은행 본관) 모습.

국가기록원 제공
2017-12-11 3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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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제공 : 정책브리핑 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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