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공장에서 분업은 생산지수를 높이지만, 자원봉사의 분업은 행복지수를 높인다.’
14일 오전 10시30분 서울 영등포구 문래2동 ‘빵굽는 마을’앞. 노란 조끼를 입은 주부 5명이 옹기종기 모여있다.“잘 잤어.”“피곤해 보인다.”“오늘은 좀 날씨가 풀렸네.”
여고생들이 등교해 아침 인사를 나누는 것처럼 다정하다.
이들은 최동화(65) 주부를 단장으로 한 문래2동 ‘자원봉사단’. 매일 아침 제과점에 빵을 받으러 나온다.
김정진 동장은 “빵굽는마을 대표인 김경희씨가 매일 빵을 20∼30개 준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김 대표는 별일 아닌데 앞에 나서기 싫다고 이날 자리를 피했다.
김 대표가 동사무소와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해 11월. 동사무소가 빵을 사먹는 쿠폰을 소년소녀가장에게 지급하고, 빵굽는 마을이 가맹점으로 등록하면서부터다. 김 대표는 “좋은 일을 시작했으니, 부족하지만 아침마다 빵도 내놓겠다.”고 먼저 제안했다.
동사무소는 독거노인들에게 빵을 간식으로 나눠주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날마다 집집마다 배달하는 게 문제였다. 골목골목에 있는 20여 곳을 1시간 30분씩 걸려 찾아가는 일이었다.
이때 문래2동 자원봉사 연합회가 나섰다. 최 단장을 중심으로 여섯 명이 돌아가며 배달을 자청한 것이다.2월 12일 배달이 시작됐다. 주중에는 독거노인에게, 주말에는 양로원에 빵을 전달한다.
하루도 빠짐없이 빵 배급에 나오는 최 단장에게 꾀가 나지 않느냐고 물었다.
“매일 운동한다고 생각하면 되죠. 운동장이나 공원을 무작정 걸어다니는 것도 얼마나 좋아요. 어르신들과 얘기도 나누고, 빵도 드리고….”
작은 생각의 차이가 삶을 변화시키는 법이다.
제과점을 나온 주부 박이분(51) 서영숙(51) 하정분(54) 이춘하(46)씨는 다정히 빵 가방을 들고 ‘운동’에 나선다. 미로 같은 좁은 골목을 돌고 돌아 현관문을 두드렸다. 할머니는 딸을 맞이하듯 반갑게 인사했다.
“추운데 고생하네.”
“다리는 괜찮으세요.”“아침은 드셨어요.”“달지 않은 빵 좋아하시죠.”
주부들이 건네는 따뜻한 말에 할머니는 미소를 짓는다.
“고마우이. 잘 먹을게.”
손까지 다소곳하게 모아 감사의 뜻을 전한다.
집이 비었으면 할머니와 약속한 비밀장소에 빵을 넣어두고 돌아선다.
찾아가는 곳마다 주부들이 건네는 인사가 달랐다.
“XX이는 이번에 중학교에 갔죠. 공부를 잘한다면서요.”
“성경 읽기는 재미있으세요. 눈 나빠지시니까 쉬엄쉬엄 하세요.”
금속가공업체로 둘러싸여 꼭꼭 숨은 집을 찾아내는 것도, 그 곳에 사는 할머니의 일상을 꿰뚫었다는 것도 신기했다.
“동네 어르신이잖아요. 수십년간 골목을 오가며 만나 얘기하고, 인사하죠. 도시지만 우리 동네는 정이 남아 있답니다.”
최 단장의 동네 자랑에는 정이 담겨 있다.
지나가는 트럭이 옆에 서더니 운전사가 ‘무슨 자원봉사냐.’고 물었다.“할머니께 빵을 드린다.”고 말하자 “좋은 일하느라 수고한다.”며 손을 번쩍들어 응원해 준다.
25년째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최 단장은 “자원 봉사를 하려고 나서는 사람이 예전보다 눈에 띄게 늘었다.”면서 “각박해졌다고 말하지만, 깊이 살펴보면 훈훈한 얘기가 넘쳐난다.”고 말했다. 지난해말 영등포구청이 실시한 자원봉사 교육에도 500여 명이 등록했다.
“할머니가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면 옛날에 맛난 음식을 몰래 챙겨주던 우리 할머니가 생각나요. 그래서 봉사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할머니만큼이나 저도 행복해지니까요.”
매서운 겨울을 이겨낸 봄의 햇살만큼이나 주부들의 마음씨가 따사로웠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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