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전칠기 서울시 무형문화재 손대현(57)씨는 지난해 10월 삼성전자가 출시한 1억 3000만원짜리 TV의 외관을 디자인해 화제가 된 인물이다.
그는 삼성과 LG 등 대기업 비서실로부터 여러 차례 주문제작을 받고 있다.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도 손씨 작품 소유
또 대통령이 해외 순방 때 엘리자베스 여왕과 일본왕 등에게 그의 작품을 선물로 주었다.
지난 10일 서울 강동구 천호동 현대백화점 앞 많은 인파 속에서 그를 찾을 때 단번에 그를 알아봤다. 그을린 얼굴과 흐트러진 머리카락, 깊이가 느껴지는 눈이 여느 사람과 다르게 보였기 때문이다. 찻집에서 대화를 시작하자 팔 군데군데 검은 옻이 묻어 있고, 손톱 사이에 낀 옻이 보였다. 옻칠은 옻나무에서 나온 수지를 가공해 가구 등에 칠하는 것을 뜻한다.
그에게 좋은 작품을 만드는 비결을 묻자 “혼과 기가 작품에 스며들어야 한다. 작품에 집중하면 오감으로 면이 매끄러워지는 것을 느낀다.”면서 “작품을 하다 지쳐 몇 시간 졸았는데도 손은 움직이고 있는 걸 발견한다.”고 웃었다.
손씨가 나전칠기와 인연을 맺은 것은 40여년 전. 가정 형편이 어려워 학교를 못 마치고 다닌 무역회사 건물에 나전칠기 공방이 있었다.“나전칠기 만드는 게 재미있어 보여 공방에 취직했고 그 곳에서 만나 현재 같이 활동하고 있는 유재창(57)씨가 당시 나전칠기 3대가 가운데 한 사람인 민종태(작고) 선생님을 소개해줬다.”고 말했다.
●나전칠기 대가 故민종태씨 수제자
나전칠기는 주로 옻칠 바탕에 영롱한 무지갯빛 자개를 붙이거나 박아넣어 그림과 무늬를 놓는 공예기법이다. 민 선생은 일찍이 손씨의 재능을 예감했다. 민씨는 집 근처에 방을 마련, 손씨는 거기서 10년 동안 나전칠기를 만들었다. 손씨는 민 선생로부터 혼과 우리 문화에 대한 자존심을 배웠다고 한다.
“한 일본 상인이 일본식 문양으로 만들어 달라고 했다. 민 선생은 내 혼이 없는 것은 만들 수 없다.”면서 손씨에게 “우리는 제품을 수출하는 게 아니라 우리 문양과 문화를 수출한다. 누가 봐도 내가 만든 것이라는 걸 알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시 찾아온 일본 상인은 민 선생이 내놓은 작품에 탄복하며 무릎을 꿇고 물건을 받았다고 한다.
손씨는 스승 민씨와 평생을 같이했다. 민씨의 일을 도우며 하나씩 배웠고 때론 민씨가 받은 주문제작을 대신 만들기도 했다. 그러다 손씨는 1992년 전승공예대전에서 국무총리상을 수상하면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또 민 선생은 세상을 뜨기 1년 전인 1996년 손씨를 수제자로 공식 선언해 화제가 됐다. 그는 1999년 서울시 무형문화재가 됐다.
손씨가 무형문화재가 된 것 역시 민종태 선생과의 인연 때문이다. 민 선생은 늘 “작품을 만들 때 초칠과 덧칠, 삼배 바르기, 이음 부분 메우기 등 여러 과정이 있다. 과정마다 정성이 부족하면 100년 갈 작품이 50년도 못 간다.”면서 “전 과정에 충실해야 고려 나전칠기 국당초문대모연저함처럼 1000년이 지나도 튼튼하고 빛이 아름다운 걸 만든다.”고 했다.
●1억 3000만원짜리 TV 외관 디자인
손씨는 현재 서울대학교 공예학과와 전통공예건축학교에 출강하고 있다. 그도 학생들에게 전 과정에 충실하면 고려 나전칠기 국당초문대모연저함 같은 1000년간 변하지 않는 작품이 된다고 가르친다. 학생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고 능력있는 학생은 제자로 삼는다고 한다.
“다른 무형문화재 분들은 무형문화재 보유자가 점점 줄 것이라 한다.10년 전엔 정말 열악했다. 하지만 최근 배우겠다는 학생이 늘고 있다.1억 3000만원 짜리 TV에 전통 옻칠을 한 것은 수요가 늘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면서 그는 노력 여하에 따라 더 좋은 무형문화재가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에 대해 “바라는 걸 많이 이뤘다. 앞으로 내 작품 전시관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아직 살 날이 적지 않아 언젠가 스승 민종태 선생님의 경지에 올라야 한다는 책임감도 느낀다.”고 덧붙였다.
박지윤기자 jypar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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