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 평균 160여건 감사 청구… ‘국민 신문고’ 자리매김
거가대교의 개통을 앞둔 지난해 12월. 1만원으로 잠정 결정된 통행료가 단박에 지역사회의 이슈로 떠올랐다. 거가대교 개통 대비 범시민대책위원회가 꾸려졌고, 범대위는 일사천리로 “통행료가 시민의 뜻과 상관없이 턱없이 비싸게 책정됐다.”면서 감사원에 거가대교 사업비 실체 규명을 위한 감사를 청구했다. 삽시간에 2000여명이 넘는 시민들이 감사를 요구하는 서명작업에 동참했다. 이후 불과 한달여 만인 1월 감사원은 비싼 통행료와 총사업비 과다산정 의혹 등을 조사했다. 결과는 주민들의 한판 승리였다. 지난 7월 감사원은 당초 주민들의 주장대로 거가대교 총공사비가 과다산출됐다는 감사 결과와 함께 소형차 기준 통행료를 6000~8000원으로 내릴 것을 부산시와 경남도에 권고했다.●제도 도입 10년… 커지는 시민 발언권
시민의 ‘발언권’이 세지고 있다. 국민이 직접 국가 및 행정기관의 비리나 비효율 정책 등을 고발해 바로잡는 감사청구 제도가 착실히 뿌리를 내리고 있다.
국민들의 감사청구를 접수하는 기관인 감사원은 “공익을 해치는 사안에 대해서는 지체 없이 감사청구 카드를 활용할 수 있다는 인식은 넓게 자리 잡아가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감사원의 감사청구 제도가 도입된 것은 2002년. 국민이 감사원을 직접 움직일 수 있는 감사는 ‘국민감사청구’와 ‘공익감사청구’로 대별된다.
국민감사청구는 공공기관의 사무처리가 법령 위반 또는 부패행위로 인해 공익을 해칠 경우 만 20세 이상의 국민 300명 이상이 서명 등 신청요건을 갖춰 감사원에 감사를 청구할 수 있도록 돼 있다. 공익감사청구는 주체와 감사 대상 범위가 훨씬 더 포괄적이다.
감사청구 주체는 만 20세 이상 300명 이상, 상시 구성원 300명 이상인 비영리·비정치적 시민단체, 감사대상 기관의 장, 지방의회 등이다. 감사 범위도 넓다. 주요 정책이나 사업 등이 장기간 지연되는 사항, 국가행정·시책·제도 등이 불합리해 개선이 필요한 사항, 기타 공공기관의 사무처리가 위법 또는 부당행위로 인해 공익을 해한다고 판단되는 경우를 두루 포함한다.
●건설-교통-인허가 분야 ‘최다’
감사원 감사청구조사국에 따르면 국민·공익 통틀어 한해 평균 감사청구 건수는 160여건. 2007년부터 올 5월까지 접수된 청구사례는 국민감사가 139건, 공익감사가 572건이다.
분야별 청구 현황을 살펴보면 국민감사 쪽에서는 지난 5년간 건설·교통 관련 사안이 전체 건수의 36%(50건)로 가장 많았고, 환경(18건, 13%)분야가 뒤를 이었다.
공익감사 쪽도 상황은 엇비슷했다. 건축 관련 인허가(127건, 22%)와 건설·공사(113건, 20%) 관련 사안이 두드러지게 많았다. 감사청구조사국 관계자는 “지방자치시대에 각종 건설 및 교통확충 사업 등이 늘어나면서 주민들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히는 한편으로 지역사업에 대한 감시활동도 그만큼 활발해진 결과”라고 설명했다.
건수 자체가 눈에 띄게 늘어나지는 않지만, 감사청구로 바로잡히는 지역사업의 덩치는 부쩍 커지는 추세다. “지방자치단체의 사업이나 정책에 문제가 있을 때 방관하거나 민원 제기로 끝내지 않고, 감사청구 카드를 빼들어 적극적으로 자치행정에 관여하는 시민문화가 정착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옛 마산 수정만 매립지 문제도 주민들의 삼엄한 감시로 행정기관이 백기를 든 경우다. 매립지 주민대책위원회는 수정만 매립사업 정산협약 과정에서 당시 마산시가 STX중공업에 특혜를 줬다는 의혹과 함께 STX의 입주가 부당하다며 공익감사를 청구했던 것.
지난 6월 감사원은 공유수면 매립공사의 총사업비를 과다산정해 87억원 상당의 땅이 부당하게 STX 소유가 됐다고 밝혔고, 결국 STX중공업은 수정만에 지으려던 조선기자재 공장을 포기했다.
●지자체장 압박 수단 활용 사례도
자신들의 주장과 이익을 지방행정에 반영하려는 주민들이 한마디로 자치단체의 감사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실제로 행정안전부 집계에 따르면, 2000년부터 올 6월까지 근 12년간 광역자치단체에 청구된 주민감사는 모두 226건. 연평균 20.5건으로, 시·도별로는 고작 1건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검찰 수사로까지 확대된 용인 경전철 비리의혹은 자치단체의 ‘하나마나 감사’의 대표 사례다. 경전철이 착공되기 직전인 2004년부터 지금까지 경기도 감사관실이 관련 사업에 대해 실시한 종합감사는 무려 3차례. 그럼에도 비리는 단 한 건도 적발하지 못했다.
이 사업 일부에 대한 문제는 2005년 감사원에도 공익감사 형태로 제기된 적이 있었다. “공익감사는 청구인이 제기한 의혹만 대상으로 실시하는 만큼 당시 감사에서는 불문 처리됐다.”는 감사원 관계자는 “하지만 그 즈음부터 경기도 차원에서 내부감시를 철저히 했더라면 비리나 부실공사를 상당 부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몇년째 말썽거리로 감사원 감사청구까지 거쳤던 김해 경전철(2005년), 김포 경전철(지난해) 등도 자치단체의 내실 있는 감사가 선행됐다면 시비가 크게 줄었을 사안들로 꼽힌다.
감사원 감사청구조사국 담당자는 “감사원 감사청구법상 다른 감사기관에서 처리된 사안이 다시 청구되면 각하처리된다.”면서 “지역민들이 그래서 민원을 감사원으로 곧바로 넣고 있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특정단체가 지자체장을 압박하기 위한 정치적 수단으로 악용하는 경우도 적잖다는 해설도 있다.
●감사청구제 ‘투명 운영’ 숙제
내년이면 도입 10년이 되는 감사원 감사청구는 명실공히 국민의 마지막 ‘신문고’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제도 운영상 보완돼야 할 몇몇 문제점도 지적되고 있다.
가장 자주 불거지는 문제가 투명한 정보공개. 감사원은 청구인의 신상정보 보호 등을 이유로 감사결과를 제외한 나머지 감사청구 관련 자료들은 일체 비공개로 처리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일부 시민사회단체들은 불만이 크다. “각하 또는 기각되는 사유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어 감사원이 편의대로 업무를 처리하거나 정치적 중립성이 흔들리더라도 이를 감시할 방도가 없다.”는 주장들이다.
이에 따라 지난 9월 참여연대는 감사원에 감사청구 목록, 기각 사유 공개 등을 요구하며 서울 행정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2011-11-14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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