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눈 되어 ‘사랑의 마라톤’
지난 26일 오전 서초구 반포천 산책로. 형광빛 노란 조끼의 조남노(55)씨가 시각장애인 유정하(64)씨와 알록달록한 고무밴드로 나란히 팔을 묶고 사이좋게 달린다. 추월하는 선수가 있거나 장애물이 있을 땐 조씨가 유씨 팔에 묶인 줄을 반대 방향으로 잡아당기거나 소리를 질러 주의를 준다. 이날 이들이 한강시민공원 영동대교를 거쳐 반포종합운동장까지 10㎞ 구간을 돌아온 시간은 총 1시간 12분. 평소 기록은 50분 안팎이지만 다른 42명의 도우미, 장애인과 함께 무리를 지어 뛰느라 일부러 속도를 늦췄다.유씨는 “불가능하게 보였던 마라톤 코스를 완주할 수 있었던 건 오늘 대회뿐만 아니라 연습을 통해 눈이 되어 준 서초구청 마라톤 동호회원들 덕분”이라고 말했다.
●팔을 서로 묶고 10㎞ 완주
30일 서초구에 따르면 마라톤 동호회원 20여명은 매월 한 차례 남산 산책로로 향한다. 앞이 보이지 않아 어려움을 겪는 시각장애인 마라토너의 훈련을 돕기 위해서다. 회원들의 활동은 2006년 10월부터다. 구가 그해 8월 주민들의 자원봉사 참여율을 선진국 수준인 40%로 끌어올리자는 취지로 ‘자원봉사 특별구’선언을 하면서다. 직원들은 연간 48시간 이상을 의무제로 봉사에 참여하고 있다.
평소 주말에 양재천이나 한강 등지에서 마라톤을 즐기던 동호회원들은 취미와 봉사를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시각장애인 마라톤 도우미’활동을 시작했다. 이를 위해 한국시각장애인마라톤클럽과 자매결연을 갖고 매월 1회, 주로 넷째 주 토요일을 이용해 시각장애인들의 훈련도우미로 나선다. 간단한 몸 풀기가 끝나면 달리기 속도가 비슷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의 팔을 밴드로 묶고 하루평균 6~12㎞를 함께 질주한다. 지난 26일에도 구가 주최하는 ‘행복마라톤 대회’에 44명이 참가했다.
●직원 1인당 평균 120시간 사랑나눔
직원들의 봉사열기는 토요일에도 확인할 수 있다.
주말마다 구청 광장을 가득 메우는 ‘토요벼룩시장’에 가면 신청 접수부터 현장 질서유지, 정리까지 모두 공무원이 도맡는다. 기존 휴일근무나 시간 외 근무였던 것을 자원봉사로 전환한 것.
●토요휴무일도 자발적 민원서비스
바쁜 직장인들과 학생들을 위해 실시하고 있는 ‘토요민원서비스’ 역시 직원 봉사자들의 몫이다. 현재 통합민원실인 ‘OK민원센터’ 직원의 25% 수준인 20여명의 직원들은 자발적으로 토요일 근무에 참여한다. 또 전 직원이 개인별 또는 동아리별로 팀을 구성해 홀몸노인 집수리, 양재천·청계산 환경지킴이, 복지관 중증장애인 도우미 활동 등을 펼쳐오고 있다.
자원봉사 특별구가 선포된 2006년 8월부터 현재까지 전 공무원의 봉사활동 시간은 총 15만 5000시간. 2년여 동안 직원 1인당 평균 120시간의 자원봉사활동을 펼친 셈이다.
박성중 구청장은 “마라톤 동호회원들처럼 취미와 결합되거나 자녀나 배우자 등과 함께 참여하는 등 자원봉사 분위기가 지역에 자연스럽게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소득”이라고 말했다.
백민경기자 white@seoul.co.kr
2009-10-1 12:0:0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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