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머니 얇은 공무원에 반값 요리 판매
서울시청 주변에는 음식점 종류에 상관없이 공통 메뉴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시민은 드물 것으로 보인다. 중국집과 일식집, 심지어 서양요리집에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메뉴판에 딱히 표시돼 있는 것은 아니다. 주문자가 누구냐에 따라 내놓는 특별 메뉴다. 그 이름은 이른바 ‘서울시 메뉴’이다.대표적인 곳이 D일식집이다. 이곳에서 점심 시간에 서울시 메뉴를 주문하면 정식을 내놓는다. 이는 이명박 대통령과 고건 전 총리 등이 서울시장 재직 당시 즐겨 먹던 음식으로도 유명하다.
나오는 음식의 가짓수는 그대로지만 양을 절반으로 줄인 것이다. 때문에 가격도 일반 정식의 반값이다.
J중국집은 D일식집과 달리 점심 정식으로 나오는 요리의 종류를 줄였다. 요리 가짓수가 줄어든 만큼 음식값도 싸다. 질좋은 스테이크와 파스타 등으로 미식가들 사이에서 꽤 알려진 R음식점과 L음식점 등에도 이런 서울시 메뉴가 있다.
이렇듯 서울시 메뉴가 확산된 데에는 음식점과 공무원들의 이해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공무원들은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데다, ‘공무원 행동강령’은 공무원이 직무관련자로부터 3만원 이상의 선물이나 접대를 받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시청 주변 음식점 입장에서는 서울시 본청에 근무하는 공무원만 4000여명에 이르고 있는 만큼 이들이 최대 고객에 해당한다.
때문에 서울시 메뉴 대신 ‘공무원 할인’ 카드를 꺼내든 음식점도 적지 않다. N냉면집과 C복집, G낚지집 등은 공무원 손님에게 5~10%의 할인 혜택을 준다.
한 서울시 공무원은 “공무원들이 즐겨 찾는 단골 음식점을 중심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면서 “처음에는 장삿속으로 시작됐겠지만, 차츰 문화로 자리잡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2010-08-2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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