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자 직무 한정… ‘지능적 부패’ 척결 한계
양건 감사원장 후보자가 지난 8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공직자 직무감찰에도 계좌추적이 필요하다고 언급하면서 이에 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9일 감사원에 따르면 계좌추적권은 감사원법 제27조 2항의 규정에 명시되어 있다. 회계검사와 감사대상 금융기관에 대한 감사를 위해 금융거래에 관한 정보 또는 자료의 제출을 요구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이 법 3~5항에는 금융거래에 관한 정보 또는 자료의 제출은 감사에 필요한 최소한도에 그쳐야 하고 누설하거나 해당 목적 이외의 용도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돼 있다. 계좌추적은 국가 예산을 사용하는 기관의 회계검사나 금융기관에 한해서만 가능하다는 규정이다.
양 후보자의 발언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공직자의 직무감찰에서도 계좌추적이 가능하도록 더욱 확대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공무원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마치 공직자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느낌이라는 분위기이다. 구문회 행정부공무원 노동조합 사무총장은 “계좌추적이라는 사후적인 조치보다 처우개선 등 근본적인 제도정비가 선행되어야 한다.”면서 “자칫 공무원의 근무의욕을 떨어뜨릴 수 있는 만큼 예방적인 부분에 비중을 더 많이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직무감찰의 경우 본인 등의 동의 아래 감사 시 계좌추적을 할 수 있다. 감사원법 27조 5항에 근거해서다. 이 조항은 ‘다만 본인 또는 자료를 제출한 기관의 장의 동의가 있는 경우에는 그러하지(감사목적 이외의 용도로 이용하여서는 안된다.) 아니하다.’는 규정이다. 일부 상인들의 반발을 샀던 서울 메트로 감사의 경우 계좌추적이 여러 건 진행됐다. 계약 관련 및 당사자의 동의로 추적이 가능했다.
문제는 회계나 직무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없는 순수 공직자의 개인적인 부분은 계좌추적이 불가능하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 특정 공직자가 유흥가, 골프장 등의 출입이 잦고 씀씀이가 지나치게 크다고 해도 감사원은 계좌추적을 할 수 없다.
한국헌법학회의 2005년 발표자료에 따르면 대부분의 공직비리가 뇌물성을 띤 금전거래와 맞물려 날로 지능화되고 있지만 통상의 감사로는 그 적발에 한계가 있다. 이 때문에 “현행 법 체계 하에서 유독 감사원이 계좌추적권을 보유한다고 헌법상의 영장주의에 위배되고 사생활을 침해한다는 문제제기에는 동의하기 어렵다.”는 주장도 있다.
이번 양 후보자의 발언은 직무감찰 필요성을 더욱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감사원 관계자는 “회계검사와 공직자의 직무감찰을 구분짓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점이 많다.”면서 “양 후보자의 발언은 이 같은 애로사항을 지적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동구기자 yidonggu@seoul.co.kr
2011-03-10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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