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도 맞아봐야 아픈 지 알죠. 보고만 들어선 이해 안 돼요”
29일 새벽 1시 30분, 빗줄기가 점차 굵어지고 있다. 간이 우비를 입고 음식물 쓰레기를 거둬 가는 유종필 관악구청장의 얼굴에 땀인지 빗방울인지 모를 물줄기들이 줄줄이 흘러내린다. 28일 밤 11시 20분부터 ‘무박 2일 환경미화원 체험’을 시작한 그가 쓰레기를 거둬들이기 시작한 지 2시간째 접어들고 있다. 조금 시늉만 하고 사진 찍는 전시행정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열심이라고 주변에선 입을 모았다.봉천1동 달동네로 더 잘 알려졌던 보라매동은 쓰레기 차량이 좁은 골목길을 올라갈 수 없어, 환경미화원들이 손수레를 끌면서 수거해 큰길에 내놓아야 한다. 언덕배기를 올라가 쓰레기를 모아서 무거워진 수레를 끌고 내려오는 일은 환경미화원들에게도 쉽지 않다. 수레 밑에 폐타이어를 대서 내려올 때 속도를 조절하도록 장치해 놓은 것만 봐도 그렇다. 여름철 쓰레기 수거는 악취에 시달리고, 겨울철에는 눈과 빙판으로 길바닥이 미끄러워 위험하다.
환경미화원 첫날을 맞은 유 구청장은 음식물쓰레기의 악취도 악취이지만, 재활용 쓰레기도 같이 놓여 있어서, 문외한이라 어느 것을 거둬들일지 몰라 엉거주춤했다. 유 구청장은 함께 쓰레기 수거에 나선 전문가의 눈치를 보면서 점차 속도를 내고 있었다. 하지만 자정을 넘기면서 오르막인 골목길에 점점 빗물이 불어나고, 쓰레기 수거용 손수레의 움직임도 아슬아슬해 보였다. 관악구 청소담당 과장은 비가 많이 와서 위험하다는 판단으로 예정보다 30분 정도 일찍 끝내자고 했다. 비와 땀에 얼굴이 상기되고, 익숙지 않은 노동에 호흡도 가빠 보였다.
새벽 2시. 이제 유 구청장은 쓰레기를 싣고 클린센터에 가서 김포매립지로 갈 컨테이너박스에 한가득 쓰레기를 채웠다. 인간이 토해 낸 쓰레기는 역겹기도 하고, 쓸데없이 너무 많다. 무한대로 증식하는 욕심의 잔재들이 클린센터에 수십 개의 컨테이너박스로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환경미화원들과 함께 샤워를 마치고, 유 구청장은 ‘오늘의 동료’들과 선지해장국을 한 그릇씩 하러 발길을 옮겼다. 장맛비 속을 뚫고 유 구청장은 왜 무박 2일 환경미화원 체험에 나섰을까.
“매도 맞아 봐야 아픈지 알잖아요. 공무원들 보고만 들으면 잘 이해가 안 돼요. 우·문·현·답, 우리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는 생각으로 쓰레기 수거의 전 과정을 한번 살펴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앞으로도 임기가 3년 남았는데, 현재 쓰레기 수거 시스템을 바꿀 묘안을 찾고 있지요. 꼭 찾아서 해결하려고요.”라며 사뭇 진지한 얼굴을 했다. 올 초 관악구는 쓰레기 수거와 관련해 준공영제를 적용했고, 처우개선을 위해 2년 연속 연봉 10% 인상을 약속해 놓은 상태다. 그는 해장국집에서 청소담당 과장에게 “이분들이 현장에서 개선됐으면 하고 희망하는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어 달라.”고 주문도 했다.
지난겨울 추위에 음식물 쓰레기통이 동파돼 어려움을 겪는 구민들이 “음식물 수거통을 빨리 보내 달라.”고 구청에 요청하고 있는데,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선거법 위반’이라고 하는 바람에 못 한 것도 유 구청장으로서는 안타깝다. 그래서 관련 조례 제정을 검토하고 있다. 유 구청장은 “매주 목요일 아침 7시부터 각 동을 돌면서 청소를 하고 있는데, 깨끗한 주거환경이 되면 그곳에 사는 주민들도 바뀐다는 것을 느낀다.”면서 “가능하면 궂은 일들은 직접 해 보며 해결책을 모색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올겨울 다시 한번 ‘무박 2일’ 해 봅시다. 오늘 고생하셨습니다.”
글 사진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2011-06-30 1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