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서울청사 의견함 마련 “반신반의하며 넣었는데…” 방호실에 간이식당 등 신설… 지하1층 미화원 휴게실 찾아 정종섭 장관 “수용시설 같다” 2층에 새 휴게실 신축 지시
시작은 작은 쪽지였다. 지난 8월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는 ‘장관님께 바란다’ 쪽지를 넣을 수 있는 작은 상자가 복도마다 마련됐다. 정종섭 당시 안전행정부(현 행정자치부) 장관이 취임 직후 직원 의견을 듣겠다며 설치한 것이다. 대개 반신반의하며 의견을 적어 넣었다. 청사 방호원들과 환경미화원들 역시 열악한 편의시설을 확충해 달라고 건의했지만 사실 큰 기대를 하진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작은 건의 사항 덕분에 방호원들과 환경미화원들은 특별한 ‘연말 선물’을 받게 됐다.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이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2층에 있는 방호실을 둘러보고 있다. 청사 경내 경비를 담당하는 방호원들이 휴식하는 방호실은 최근 정 장관 지시에 따라 침상과 소파 등 편의시설이 대폭 개선됐다. 행정자치부 제공 |
한달 정도 공사가 끝난 뒤 방호실은 전용면적이 이전보다 33㎡ 넓어졌다. 낡은 시설도 새로 교체됐다. 소파와 개인 옷장을 전면 보수한 것이 특히 눈에 띄었다. 근무 중에는 제자리에 계속 서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해 휴게실 한쪽에는 온돌 침상을 정비해 누워서 따뜻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했다. 폐쇄회로(CC)TV 상황실도 확장하고 간이식당도 신설했다. 샤워장도 넓혔다.
정 장관이 “군대식 침상인데 사생활 유지가 안 될 것 같아 마음에 걸린다”고 의견을 물어보자 담당 과장은 “잠을 자는 용도보다는 앉거나 누워서 쉬는 용도이고 별도로 이부자리가 있는 데다 바닥이 온돌인 걸 방호원들이 더 선호한다”고 답했다. 정 장관은 방호실을 둘러보다 즉석에서 공기청정기 설치를 지시하기도 했다. 겨울철 근무에 대비해 귀마개도 지급하기로 했다.
방호실을 나선 정 장관이 향한 곳은 지하 1층이었다. 청사 청소를 담당하는 환경미화원들은 직접고용도 아니다 보니 지하 1층 공문서 파쇄기 바로 옆 좁은 사무실을 개조한 곳을 휴게실로 쓰고 있었다. 청소 인원은 남성 15명, 여성 45명, 사무실 직원 2명 등 62명이었고 휴게실과 사무실을 합한 면적은 66㎡에 불과했다. 창문 하나 없는 휴게실을 둘러본 정 장관은 “헌법학 관점에서 보면 이건 사람이 쉬는 곳이 아니라 그냥 수용시설”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청사관리소는 정 장관의 지시에 따라 법제처 등이 정부세종청사로 이전하면서 생긴 공간을 재배치해 환경미화원 전용 휴게실을 새로 만드는 공사를 오는 10일부터 시작한다. 행정자치부 관계자는 늦어도 26일까지는 공사를 마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새 휴게실은 지하 1층에서 지상 2층으로 옮겨지고 면적도 111㎡로 확장된다. 여성 환경미화원 휴게실은 거의 2배 정도 넓어진다. 방호실처럼 바닥에 온돌을 깐 침상을 설치하고 각종 비품도 새로 구입할 계획이다. 환경미화원 휴게실은 청사가 문을 연 1970년 이래 줄곧 지하 1층에 있었다. 환경미화원 시설을 둘러본 뒤 집무실로 돌아가면서 정 장관은 “잘나가는 사람들 시선으로만 보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2014-12-08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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