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 대규모 매립·상권 구상 공개 한달만에 계획서 제출 ‘속도’시민단체 “공론화 부족, 신중해야”…탑동매립 홍역 재연 우려
국제관광도시 제주도의 해양 인프라 확충을 목적으로 한 ‘제주신항 개발’ 계획을 놓고 논란이 뜨겁다.대규모 해양매립에 따른 환경훼손과 새로운 관광지구 개발로 인한 기존 상권 변화 등을 충분히 논의했냐는 게 핵심이다.
제주도는 지난 6월 30일 제주항 서쪽 탑동 앞바다에 크루즈 부두와 마리나 부두 등을 건설하는 내용의 제주신항 개발계획을 해양수산부에 제출했다.
해수부는 내년 초까지 ‘제3차 전국 무역항 기본계획’에 제주신항을 포함할지 검토한다.
도는 앞선 5월 22일 유기준 해수부 장관의 제주 방문에 맞춰 신항 계획을 ‘깜짝 발표’한 지 닷새 만인 27일에 이어 6월 23일 공청회를 발 빠르게 진행했다.
◇ 시민단체 “해양매립 등 사업 추진 신중해야”
제주 시민사회단체들은 3일 “공론화가 부족하다”며 충분한 시간을 두고 논의할 것을 요구했다.
도가 개발 구상을 공개한 지 한 달여 만에 해수부로 계획을 넘기는 바람에 도민이 사업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거나 공감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제주신항 계획에 따르면 전체 사업부지는 202만9천㎡에 이른다. 이는 마라도 면적의 6.8배 규모다.
특히 바다 20만1천㎡가 매립돼야 한다.
제주참여환경연대는 여론조사 결과 제주신항 주변의 원도심(건입동·일도1동·삼도2동) 주민의 절반 가까이가 사업 계획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주민과 인근 자영업자 등 302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46.3%가 제주신항 계획을 ‘잘 모른다’고 답했다.
신항 구상안에 대해 알고 있다는 응답자는 ‘잘 알고 있다’ 4%, ‘아는 편이다’ 49.7%였다.
조사는 전문여론조사기관에 의뢰해 지난달 10일부터 4일 간 면접 방식으로 이뤄졌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5.6% 포인트다.
홍영철 제주참여환경연대 대표는 “주변 지역 주민 절반 정도가 신항을 모른다는 것은 제주도가 신항 개발을 조급하게 추진한다는 의미이고 공론화 과정도 거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며 “도는 성실하게 그 해법과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신항 계획상 수산관광복합지구에 들어서는 상권이 주변 원도심에 미치는 영향과 관련해서도 주민들에게 이해할 만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 제주도 “신항, 장기사업…협의 기회 많아”
원희룡 제주지사는 지난달 초 기자간담회에서 “당시 부산, 인천, 광양 등이 (각 지자체의 해양·항만 사업 추진을 성사하기 위해) 해수부를 압박하는 상황이었다”며 “(제주로서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대응하기 위해 해수부 장관이 크루즈를 타고 제주를 방문했을 때 극적으로 계획을 발표하게 됐다”고 해명했다.
그는 “신항을 제주 미래발전계획 가운데 하나의 숙제로 받아들였다”며 “졸속으로 세운 계획이 아니라 부서에서 오래 전부터 연구해왔다”고 강조했다.
그는 공론화 과정이 부족하다는 지적에 대해 “해수부와 길고 긴 협상 과정이 있고 기획재정부와 다시 협상하는 과정에서도 개발 계획의 규모와 내용이 얼마든지 변경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도는 현재 제주의 해상관문인 제주항에 대해 외항은 항내 수역이 좁아 15만t급 이상 초대형 크루즈 선박이 들어오기 어렵고, 내항은 고정 선석이 없어 여객·화물 부두가 뒤섞여 운영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선석도 포화상태로 신규 카페리 취항 등에 어려움이 있으며 친수공간도 부족하다고 분석했다.
또 제주를 오가는 국제크루즈선은 증가하는 데다 선박들이 대형화돼 대규모 크루즈 관광지구 건설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다.
도는 제주항 외항의 크루즈 부두와 내항의 국내여객 부두를 신항으로 옮겨와 초대형 크루즈 부두와 국내여객 부두, 워터프론트 등이 포함된 ‘해양관광 허브지구’를 만드는 것이 미래를 위해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
크루즈 부두는 22만t급 1선석·15만t급 2선석·10만t급 1선석, 국내여객 부두에는 2만t급 1선석·1만t급 3선석·5천t급 5선석이 들어서는 것으로 계획됐다.
도는 공청회에서 대규모 해양매립에 따른 문제들이 제기되자 어민들의 요구를 부분 수용했다.
항만재개발지역(해양친수 문화지구)의 면적을 기존 79만9천㎡에서 48만1천㎡로 31만8천㎡를 축소, 조정했고, 실제 바다 매립 면적도 20만1천㎡로, 애초 계획보다 2만7천㎡를 줄였다.
어민들이 생계 보장을 위해 요구한 제주항 어항의 내수면적은 기존 11만9천㎡에서 17만㎡로 5만1천㎡를 넓혔다.
어항 육상시설 부지면적은 5만1천㎡에서 13만2천㎡로 2.6배 늘려 수산복합관광지구로 개발하기로 했다.
어항 입구인 항만재개발지역에 조성하는 것으로 구상했던 마리나 시설을 제주신항 국내 여객부두로 편입하는 것으로 변경, 어항 시설로 진입하는 어선들의 통행을 방해하지 않도록 조정했다.
◇ ‘홍역’ 치른 탑동매립 사태 ‘재연될까’ 우려
제주신항 계획이 해상 인프라 확충이라는 필요성에도 사업 추진이 성급하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은 과거 도민 사회가 치른 탑동해안 매립 경험이다. 당시 반대운동이 일며 ‘홍역’을 치뤘다.
1986년 당시 건설부는 1차·2차에 걸쳐 범양건영과 제주해양개발에 16만5천여㎡의 공유수면 매립 면허를 내줬고, 공사는 해가 바뀌며 곧바로 시작됐다.
해당 공유수면 일대를 오래 전부터 어장으로 활용하던 제주시 삼도동 잠수회가 어업 피해 보상을 요구하고 나섰다.
급기야 제주 대학생과 재야단체, 교수, 시민도 탑동매립 반대운동에 가세하기 시작했다.
갈등이 날로 고조되자 1989년에는 ‘탑동불법개발이익환수’ 투쟁 주민대책위원회가 결성돼 도민 서명에 이어 이익환수를 위한 국회 청원이 이뤄졌다.
재야단체와 해당 지역 주민 등을 중심으로 구성된 ‘탑동문제협의회’는 매립의 불법성을 본격적으로 제기하며 상업용지 중 50%를 환원하라고 사업자 측에 요구했다.
이런 와중에 ‘탑동문제해결을 위한 범도민회’가 결성되며 매립 반대 운동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했다.
제주시와 범양건영 등은 탑동 개발이익의 환수 방안으로 범양 측이 시가지를 관통하는 마른 하천(건천)인 병문천 2.3km 구간을 복개하고 장학금 20억원을 출연키로 약속하면서 봉합되는 듯했다.
그러나 범양 측이 합의 이행을 차일피일 미루며 갈등은 1990년 초까지 이어졌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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