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1일 서울 용산2가동 용암초등학교 4층 실과실.1학년 학생들이 흙으로 범벅이 된 손을 들어 선생님을 찾았다.먹이를 재촉하는 새끼 제비가 이럴까.담임 이순희(51·여) 교사는 아이들의 물음에 일일이 답을 해주면서도 마냥 즐거운 듯했다.
이날 수업은 1학년 2반의 도예수업.‘청토로 액자만들기’시간이다.아빠,엄마가 미리 적어보내준 글을 고사리같은 손으로 오몰락 조몰락 흰 흙을 실지렁이처럼 떼어다 흙판에 붙이는 아이들의 눈은 여느 수업보다 진지하기만 했다.‘밥 잘 먹자.’‘엄마 말 좀 들어라.’‘일찍 일어나자.’ 등 내용도 갖가지다.
저학년은 참기 힘든 1시간20분의 긴 시간이지만 지루해하는 아이는 없었다.“컴퓨터 오락보다 더 재미있다.”는 재필(8)이는 맨 먼저 ‘작품’을 완성한 뒤 친구들의 손놀림을 간섭했다.희주(8·여)는 지난 시간에 만든 화분에 심은 봉선화에 새 싹이 돋은 것을 뽐내느라 진도가 늦어지는 줄도 몰랐다.
도예시간은 이 학교 학생이라면 가장 인기있는 수업으로 손꼽는다.도예수업이 시작된 것은 지난 2001년.이 교사의 노력으로 평생교육 시범학교로 지정되면서 학부모 20여명을 대상으로 강의를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됐다.학부모들의 폭발적인 반응에 용기를 얻은 이 교사는 이듬해 학부모 대신 생활도예반을 특별활동반으로 운영,4∼6학년들을 가르쳤다.
지난해부터는 전교생으로 대상을 넓혔다.학생들은 1년 동안 80분씩,10차례 수업을 받고 있다.수업시간은 이 교사의 정규 수업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을 활용했다.수업 주제는 전 학년을 똑같게 하되 난이도를 조정해 수준별 수업이 이뤄지도록 했다.머그잔과 화분 등 학생 스스로 만든 것을 실생활에 직접 활용하도록 하니 교육 효과로도 ‘딱’이었다.
한 학기 수업에 필요한 흙은 모두 600㎏.매 학기 대치동에 있는 전문점에서 한꺼번에 구입,서늘한 학교 지하창고에 저장해 두고 사용한다.한 차례 수업에 드는 흙은 약 10㎏으로 5000원이 채 안 든다.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수업개선교사로 뽑힌 이 교사는 서울시교육청에서 지원하는 올 한 해 연구비 100만원의 거의 대부분을 흙을 사는데 사용했다.
그의 노력이 알려지면서 지난해에는 관할구청인 용산구청에서 400만원짜리 전기가마를 지원했다.실과실에 설치된 지름 1m,높이 1.5m 크기의 가마는 온도와 시간만 입력해주면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다.하지만 1200도의 고온에서 작업이 이뤄지는 만큼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방과 후 이 교사 혼자 초벌·재벌구이를 한다.
올해 그는 목표 하나를 세웠다.도예수업을 다른 학교로 널리 퍼뜨리는 것이다.도예교육의 효과를 체험한 덕분이다.산만한 아이들은 차분해졌다.공격적인 성향의 아이들도 몰라보게 얌전해졌다.주민 이모(31·여)씨는 소문을 듣고 찾아와 수업 도우미를 자청했다.
5년 전 뇌수술에 이은 투병생활로 자신의 주민등록번호조차 기억하지 못하던 이씨의 기억력은 거의 매일 수업에 참여하면서 사고 전의 기억력을 거의 회복했다.
이 교사는 “교단에 선지 25년이 흘러서야 미술교육의 중요성을 깨달은 것이 안타깝지만 앞으로 도예수업의 필요성을 널리 알리고 교직생활을 마무리하고 싶다.”고 말했다.(02)796-2167.
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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