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경기도 구리, 남양주 등 수도권에서 유동인구가 쏠리면서 동북권 최대 부도심을 뽐냈던 청량리는 서울정신병원과 맞닿은 제기로를 축으로 북쪽은 2동, 남쪽은 1동이다.
이곳 사람들은 윤락촌인 ‘588’ 하면 곧 청량리를 떠올리는 데 불만이 적지 않다. 강북구 미아동과 비슷한 처지라고 할 수 있다. 사실은 윤락촌 ‘미아리 텍사스’가 미아동이 아니라 성북구 하월곡동 88번지에 위치했다.‘588’도 청량리가 아니라 전농동에 있다.1900년대 초 철도 청량리역이 들어서면서 자연스레 생겨난 윤락촌이 철도와 시외버스를 타고 오가는 사람들에 의해 전국적으로 알려지면서 이같은 오명(?)을 뒤집어 썼다.
| 청량리2동에 있는 세종대왕기념관. 한글에 … 청량리2동에 있는 세종대왕기념관. 한글에 얽힌 기록물과 대왕의 발명품 등 과학유물, 전통 악기를 총망라해 어린이 교육장으로 더할 나위가 없다. 자동차 500여대를 한꺼번에 주차할 수 있는 예식장이 딸려 있어 이용해볼 만하다. 홍릉수목원도 가까이 있다. 서울신문 포토라이브러리 |
어언 1세기에 이르는 ‘588’처럼 청량리도 유서가 깊다. 신라 말기인 10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곳에 청량사(淸凉寺)라는 절이 있었다는 점은 유래를 잘 말해 준다.
청량리동은 조선 초부터 한성부 동부 인창방(仁昌坊)에 속해 중요한 지역으로 꼽혔다. 영조 때인 1751년 간행된 ‘도성삼군문분계총록’(都城三軍門分界總錄)에 청량리계라는 명칭이 나타난다.
1910년 경술국치로 일제가 국권을 강점한 뒤 이듬해 4월 ‘5부 8면제’ 실시로 경기도 경성부 인창면 청량리로 일컬어지다가 14년 4월 경성부 축소에 따라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 청량리가 됐다. 그러나 36년 경성부를 확장하는 총독부령에 따라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으며, 광복 후인 46년 10월엔 일제식 동명인 청량리정(町)도 청량리동으로 바꿨다.
회기로, 홍릉로가 접하는 삼거리 청량리동 206에는 세종대왕기념관이 자리잡고 있다.73년 서초구 내곡동 영릉터에 있던 세종대왕신도비(神道碑=무덤 앞이나 무덤으로 가는 길목에 죽은 이에 대한 기록을 적은 비석. 서울 유형문화제 42호)를 옮겨놓았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떡을 즐겨 해먹었는지를 살펴보게 하는 ‘떡전거리’도 청량리1동과 전농동을 잇는 도로변에 있었다는 말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면적은 청량리 1동 0.4㎢,2동 0.76㎢를 합쳐 1.16㎢다. 모두 1만 63가구에 인구는 2만 7275명이다.2동은 휘경2동(1.05㎢), 전농3동(0.85㎢)에 이어 관내 26개동 가운데 세번째로 넓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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