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명반은 놀랄 만큼 좋은 시설을 갖추고 있다.200평 정도의 공간에 목공 공작실, 금속 공작실, 정보 창안실, 준비 자료실 등이 있다. 하지만 전국 최고의 발명학교가 된 것은 이러한 시설에서만 비롯된 것은 아니었다.
●신지식인 교사의 노력, 꽃피우다
최병운(39) 교사가 이 학교에 부임한 것은 2002년. 그는 1997년 특허청에서 발명 교사 연수를 받으면서 발명의 중요성을 깨닫게 됐다. 최 교사는 담임을 맡고 있는 반아이들에게 발명 지도를 시작했다. 평소 과학에 관심이 많았던 당시 김광식 교장은 학교 차원의 발명교육을 제안, 발명반이 탄생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발명반이 인기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몇몇 아이들을 설득해 대회에 나갔고 시·도 예선에서 대뜸 9명이 상을 받자 분위기는 달라졌다. 최 교사는 “친구들이 상 타는 것을 보고 어린이들이 ‘발명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됐다.”면서 “결국 학교 전체가 발명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고 돌아봤다.
같은 해 5월 전국전자키트창작경진대회에서는 전국 최우수 단체상을 받았다. 이후 아이들의 자신감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대학민국학생발명전시회 전국최우수단체상 2연패를 비롯해 화려한 수상경력의 원동력이 된 것은 물론이다.
●교사와 학생, 발명이라는 이름으로 하나되다
전국 최고의 발명학교가 되기까지는 최 교사를 비롯한 교사들의 숨은 노고가 있었다. 대회를 앞두면 밤늦게까지 아이들을 지도하는 것은 물론 발명에 대해 따로 공부를 하기도 했다.
특히 현재 발명반을 이끌고 있는 강기용(43) 교사의 열정은 대단했다. 처음에는 발명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던 그는 후배 최 교사의 보조로 나섰다.2004년부터는 특허청 승인을 받고 문을 연 ‘발명공작교실’을 책임지게 됐다. 그는 “발명 마인드를 가진 ‘신지식인’ 최 교사를 만난 것은 큰 행운이었다.”면서 “발명의 중요성을 늦게라도 알게 돼 아이들을 지도할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강 교사는 발명학교로 성장한 가장 큰 이유는 “학생들 스스로 노력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아이들이 발명은 순간적 발상이 아닌 끊임없는 고민에서 비롯된다.”면서 “지금은 더 이상 가르칠 필요가 없을 만큼 뛰어난 학생들이 상당수”라고 전했다.
발명지도는 강 교사를 포함한 14명의 교사가 맡고 있다. 월∼목요일 방과 후 발명공작, 발명기법, 창의적 두뇌활동, 발명 상상화 및 캐릭터 그리기 등의 내용으로 수업을 진행한다.
| 오는 5월 세계적 학생발명대회인 미국 디니대회에 한국 대표로 참가하는 검산초등학교 ‘내추럴 브레인’팀.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양승원, 곽나영, 함진수, 최훈규, 차민아, 손세희, 신아름 학생.
이종원기자jongwon@seoul.co.kr |
현재 발명반 학생은 모두 80명이다. 이와 별도로 6학년 양승원·함진수,5학년 곽나영·손세희·최훈규,4학년 신아름 등 7명의 어린이가 ‘내추럴 브레인’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1월 미국 테네시대학에서 열리는 세계적 발명대회인 디니대회의 예선을 겸하는 전국학생창의력올림피아드에서 최고상인 금상을 수상했다.
이들은 요즘 오는 5월 미국에서 열리는 본선 대회를 앞두고 매일 밤 10시까지 학교에 남아 준비를 하고 잇다. 주어진 과제는 나무, 낚싯줄, 접착제만으로 150g짜리 초경량 다리를 제작하는 것. 대회 당일 가장 많은 무게를 견디는 팀이 우승한다.
자료 수집부터 다리 종류를 정하고 제작하는 것 모두 학생들 몫이다. 곽나영(11)양은 “인터넷 등으로 자료를 찾아본 결과 현수교 공법이 가장 튼튼한 것을 알 수 있었다.”면서 “제작·실험을 거쳐 보다 견고하게 만들어낼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내추럴 브레인’ 7명의 공통점은 ‘끼’와 자신감이 넘친다는 것이다. 이들은 발명을 배우면서 성격부터 달라졌다고 한다. 손세희(11)양은 “발명뿐만 아니라 매사에 ‘나는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이 생겼다.”면서 “학원을 그만두고 발명을 배우면서 얻은 수확”이라고 설명했다.
●교사 발명교육도 책임진다
특허청이 발명 교사 연수를 실시하고 있기는 하지만 매년 소화할 수 있는 인원이 한정돼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검산초등학교는 새달 파주시내 교사를 대상으로 발명교실을 운영한다.
대부분 초등학교가 공립이므로 교사들은 자리 이동이 잦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교사의 전근으로 해당 학교의 발명 교육이 중단되지 않으려면 지도 교사가 충분히 확보돼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교사 지도뿐 아니라 학부모 발명반도 개설, 운영할 계획도 갖고 있다. 김만호 교장은 “창의력을 높여주는 발명은 학교 구성원 모두가 꾸준히 관심을 갖고 지도에 나서야 한다.”면서 “앞으로도 발명교육에 전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파주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최고의 발명학교가 되기까지
▲2002년 3월 최병운 교사 부임, 담임을 맡은 학급에서 발명교육 시작
▲2002년 5월 학생발명품경진대회 시·도 예선 9명입상
▲2002년 5월 전국전자키트창작경진대회 전국최우수단체상을 받아 전국 대회 첫 수상
▲2002∼2004년 전국 대회에서 7차례 단체상 수상,350건 이상 개인 수상
▲2004년 3월 강기용 교사가 지도하는 특허청 인증 발명교실 개설
▲2005년 1월 전국학생창의력올림피아드 금상 수상, 미국 디니대회 참가 자격 획득
■ 발명은 생활속에서 결코 어렵지 않아요
발명을 어렵고 멀게만 느끼는 사람들이 많지만 검산초등학교 어린이들의 발명품을 살펴보면 ‘발명은 생활 속에 있는 것’이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다. 물론 성인의 발명품 이상으로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하는 작품도 있지만, 대부분은 작은 ‘발상의 전환’에서 비롯된 것이다. 간단하고 만들기 쉽지만 생활 속 불편함을 덜어 준다.
튜브 양쪽에 뚜껑이 달린 치약이 대표적이다. 기존의 치약은 내용물이 한쪽에서만 나오지만 이 치약은 어른용 뚜껑과 어린이용 뚜껑이 따로 있다. 어른용보다 어린이용은 구멍이 좁아 치약을 낭비하지 않는다.
생활 속의 불편함을 덜어주는 발명품은 더 있다. 플러그 끝에 이름표를 붙인, 얼핏 보기엔 아무것도 아니지만 훌륭한 발명품이 있다. 콘센트에 여러 전자제품이 복잡하게 꽂혀 있을 때 다른 플러그를 뽑기 일쑤. 이를 개선하기 위해 플러그 끝에 이름을 쓸 수 있는 공간을 만든 것이다. 여기에서 한걸음 나아가 콘센트를 뽑지 않고도 켜고 끌 수 있는 스위치를 달아 120점짜리 발명품이 됐다.
시각 장애인을 위해 센서를 단 컵도 있다. 일정 높이까지 물이 차오르면 소리가 나는 컵이다. 다른 사람들의 어려움을 생각해 발명한,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이 기특한 작품이다.
파주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발명반 지도 강기용 교사
“초등학교에서, 특히 영재교육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 바로 발명입니다.”
검산초등학교 발명반을 이끌고 있는 강기용(43) 교사는 발명교육의 중요성에 그 누구보다 강한 확신을 갖고 있다.21세기 국가 경쟁력은 창의력에서 나오고, 창의력 개발에는 발명 교육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지난 3년 동안의 경험에서 깨달았다.
“발명교육을 경험했느냐, 아니냐에 따라 아이들의 사고 정도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예를 들어 ‘A4 종이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보통 아이들은 글을 쓴다, 종이 비행기를 만든다 정도 수준으로 답하죠. 하지만 발명교육을 받은 아이들은 종이를 태운 다음 그 재를 얼굴에 바르면 군인들의 야간 위장 재료로 사용할 수 있다고 말할 만큼 생각의 폭이 넓습니다.”
그럼에도 발명교육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것이 안타깝다. 강 교사는 “초기에는 학원에 보내는 것보다 발명을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학부모들을 설득하기가 어려웠다.”면서 “지금은 많은 학부모들이 발명반을 믿고 아이들을 맡기지만 여전히 그렇지 않은 분들도 많다.”고 전했다.
발명교육이 점차 자리를 잡아가지만 아직 제도적으로 뒷받침돼야 할 부분도 많다. 가장 큰 문제는 학생들의 발명 아이디어가 어른들의 손에 넘어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것. 발명대회에서 상을 받더라도 대통령상 수상작 말고는 기술이나 발명품에 대한 권리가 6개월이 지나면 사라지기 때문이다.
강 교사는 “특허든 실용신안이든 각자 알아서 내야 하는데 시간과 비용면에서 학생이나 교사가 하기엔 벅찬 일”이라면서 “전국 대회 수상작에 한해 정부에서 실용신안만이라도 대신 내주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다.
강 교사는 교사와 학교장의 의지만 있다면 어떤 학교든 훌륭한 발명교육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발명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어떤 학교든 최고의 발명학교가 될 수 있습니다. 도전해 보십시오.”
파주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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