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 이래 우리나라 정부의 계층구조는 공무원의 신분과 계급의 바탕 위에 줄곧 서 있었다. 예컨대 실장은 1급, 국장은 2·3급, 과장은 3·4급 중에서만 임명토록 함으로써 직위가 높은 사람은 반드시 신분등급(계급)도 높게 책정됐다. 그래서 9급에서 1급까지의 ‘계급’은 공무원의 신분 또는 직위와 동의어처럼 인식돼 왔다.
부연 설명하면, 우리나라의 공무원은 모두 일정한 신분 값, 즉 ‘직급’을 갖고 있다. 직급은 직무수행 범위를 나타내는 횡적 직렬과 종적 계급을 합한 개념으로서, 모든 공무원은 바둑판처럼 세분되어 있는 직급체계의 어느 하나에 속하게 돼 있다. 때문에 공무원의 직급은 신규채용, 보직, 정원, 정년은 물론, 퇴직연금까지 결정하는 인사관리의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 그래서 직급이 오르는 승진은 공무원의 지상목표가 되어 버렸고, 또 직급에 따라 처우수준이 결정되다 보니 성과관리를 저해하는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더욱이 기관 입장에서도 직급에 상응한 보직을 주어야 하므로 조직의 탄력성이 갈수록 떨어질 수밖에 없다.
따지고 보면 우리 공직사회의 계급구조는 그 뿌리가 매우 깊다. 지체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 위에 군림하던 과거 신분사회에서 계급은 곧 신분의 상징이었다. 계급이 높은 사람은 당연히 지위와 신분도 높고, 그에 걸맞게 사회적 영향력도 컸다. 사람의 팔과 몸을 뜻하는 지체(肢體)라는 단어에서 ‘지체가 높다.’는 관용어가 파생된 것도 계급과 사회적 신분을 동일시하는 독특한 문화 때문이었으리라.
그런 점에서 직위와 계급을 사실상 1대 1로 연결시켰던 우리의 오랜 공직문화에서 ‘팀제’는 하나의 변화 신호탄이 되고 있다. 왜냐하면 팀제를 도입하는 기관들이 직위와 계급을 1대3 내지 1대4로 확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본부장은 1·2·3급, 단장은 2·3·4급, 팀장은 2·3·4·5급 중에서 임명할 수 있도록 하는데, 이로써 극단적인 경우 3급 본부장 밑에 2급 단장 또는 2급 팀장이 일하는 ‘계급 역전’도 가능하게 되었다.
이는 종래 ‘높은 계급은 직위도 높다.’는 계급의 본질적 속성을 깨뜨리는 것으로서 결국 계급의 존재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들고 있다.
그러므로 정부의 효율성과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 이제 공무원의 신분을 서열화하는 낡은 계급구조는 제복근무 등 극히 일부 직종을 제외하고는 모두 박물관에 보내야 한다.
그리하여 인사관리의 패러다임을 계급중심에서 직무의 비중과 성과, 역량 중심으로 바꾸어야 한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속도조절이다. 모름지기 모든 개혁과 변화에는 ‘연착륙’이 필요한 것이다. 계급을 그대로 둔 채 열심히 일하던 공무원이 어느 날 갑자기 직급(신분)이 낮은 공무원의 지휘감독 아래로 들어가고, 보수는 오히려 더 많이 받는 모순적 상황이 단시일 내에 파급되면 곤란하다. 오랫동안 유지되던 계급구조를 하루아침에 철폐할 경우 자칫 공직사회의 근간을 흔드는 등 후유증도 생길 우려가 있다.
따라서 3급 국장급 이상 고위공무원부터 직급 구분 없이 직무 중심으로 관리하기 위한 ‘고위공무원단제도’의 도입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 계급구조의 해체는 ‘위로부터의 단계적 개혁’이 가장 실현가능성이 높은 효율적이고 바람직한 대안이기 때문이다.
김명식 중앙인사위원회 정책홍보관리관
2005-8-26 0:0:0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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