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부터 충청지역 돌며 주민 설득전
“우리의 캠페인은 워싱턴 정가에서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디모인의 뒤뜰에서, 콩코드의 거실에서, 찰스턴의 현관에서 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시카고 그랜트파크에서 행한 감동적인 당선수락연설에서 대선 승리의 비법이 ‘밑바닥 현장’에 있었음을 고백했다. 오바마가 40대의 젊은 나이에 일약 대통령에 오를 수 있었던 무기는 바로 진정성을 바탕으로 한 현장과의 소통 능력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타운 홀(town hall) 미팅’이라는 오바마의 전매특허가 있다.원래 타운 홀 미팅은 대서양을 건너온 이민자들이 처음 정착한 뉴잉글랜드에서 시작됐다. 공직자와 주민들이 마을회관에 모여 주요 현안을 토론하는 성격이다. 공직자들은 생생한 여론을 들을 수 있고, 주민들로서는 정책결정권자에게 직접 의견을 전했다는 만족감을 갖게 된다. 직접 민주주의의 냄새가 묻어 있다.
오바마는 대통령이 된 뒤에도 타운 홀 미팅을 애용하고 있다. 최대 이슈인 건강보험 개혁도 전국을 도는 타운홀 미팅을 통해 의회를 압박했다. 그 덕분인지는 몰라도 지난달 미 하원에서 건강보험 개혁법안이 100년 만에 통과됐다.
정운찬 국무총리가 이번 주말부터 충청 지역을 돌며 세종시 원안 수정에 반대하는 주민들과 타운 홀 미팅 형식의 간담회를 갖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6일 알려졌다. 아예 현지에서 숙박을 겸하는 안도 검토되고 있다. 하지만 정 총리의 ‘오바마 벤치마킹’이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현지 분위기가 워낙 험악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한나라당 의원들은 세종시 현장을 찾았다가 주민들로부터 계란세례를 받고 발길을 돌렸고, 정 총리도 성난 시위대를 맞닥뜨려야 했다.
토론문화가 우리보다 정착된 미국에서도 타운 홀 미팅은 종종 위험한 상황을 연출한다. 오바마가 참석한 타운 홀 미팅 현장 부근에서 권총을 소지하고 있다가 붙잡힌 사람도 있고, 미팅을 열었던 민주당 의원이 살해 협박을 받은 경우도 있다. 반대파의 소란 때문에 미팅이 진행되지 못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총리실 실무자들이 아직 타운 홀 미팅 일정이 확정되지 않았다고 밝히는 배경에는 이런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작용하는 것도 같다. 참고로 오바마 대통령은 난관을 피해가지 않았다. 그는 반대자들의 저항을 힘으로 제압하거나 설득의 절차를 무시하기보다는 스스로 설득의 전면에 나섰다. 그의 이런 ‘소프트 리더십’은 시카고 빈민가에서 인권운동을 하면서 체득한 것이다. 요체는 바닥에 눈높이를 맞추고 진정성을 보여주는 데 있다. 심칠뇌삼(心七腦三), 머리는 잠시 놓아 두고 마음을 내미는 게 오바마식이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2009-12-7 12:0:0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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