市 진주성에 진주대첩광장 조성 “주제가 ‘비움’… 외곽 옮겨야”
사업회 “시민 의견 반영 안 해… 근대 인권운동 정신 유지해야”일제강점기 인권·사회운동을 기념하는 ‘형평운동기념탑’(衡平運動紀念塔) 이전을 둘러싸고 경남 진주시 여론이 분열하고 있다. 형평운동은 백정들의 신분해방운동으로 진주에서 시작해 전국으로 확산된 사회운동이었다. 이에 형평운동기념사업회와 진주시의원 등은 진주시가 기념탑 이전을 일방적으로 결정했다며 재고를 요구하지만, 진주시는 강행하겠다는 방침이다.
진주시는 18일 진주대첩의 역사성과 진주의 호국충절 정신을 기리고자 진주성 촉석문 앞 일대 2만 5000㎡에 ‘진주대첩기념광장’을 조성한다고 밝혔다. 진주시는 보상비 600여억원을 포함해 모두 980여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광장 예정 부지 안에 있는 ‘장어거리’ 음식점 등 모든 시설물을 사들여 2018년 광장을 완성할 예정이다. 그 때문에 진주성 앞에 조성된 형평운동기념탑도 들어내 외곽으로 옮기겠다고 밝혔다. 시는 진주대첩기념광장 주제가 ‘비움’이라 형평운동기념탑도 들어내야 한다고 설명했다.
형평운동기념탑은 진주시민들에게는 특별한 기념탑이다. 1923년 진주의 백정들은 차별 대우 철폐와 평등을 외치며 형평운동을 벌였다. 진주의 양반들도 참여했다. 진주에서 시작해 전국으로 확산한 형평운동은 근대 인권운동의 시발로도 볼 수 있다. 그 덕분에 진주가 인권운동의 발상지라는 점을 널리 알리고 이 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기념탑을 1996년 건립한 것이다. 특히 지방정부가 주도하지 않고 진주시민과 출향 인사, 해외 동포 등 1500여명이 한두 푼 성금을 모은 결과물이었다.
김중섭 경상대 교수도 “역사는 짧은 기간 권력을 소유한 단체장 등 특정한 사람의 것이 아니다”라며 “역사도시인 진주의 정신을 유지하려면 형평운동기념탑을 현재의 자리에 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시민은 “조선시대 전쟁을 기념하려고, 근대 시민들의 인권운동의 흔적을 없애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비판했다.
이창희 진주시장과 서은애 진주시의원은 형평운동기념탑 이전을 놓고 최근 시의회에서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서 의원은 시정질문에서 “기념탑을 그대로 존치해 달라는 기념사업회 측의 의견을 존중해 달라”고 소통을 촉구했다. 서 의원은 “진주대첩기념광장 설계를 맡은 회사는 기념광장 조성 예정지 안에 형평운동기념탑이 있는 사실조차도 모르고 있었다”며 “시가 처음부터 형평운동기념탑을 들어낼 계획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시민들에게 기념탑 이전의 부당성을 알리는 활동을 할 계획”이라고 밝혀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논란으로 현재 부지 매입이 82% 진행됐지만, 낮은 보상가 탓에 일부 상인의 반발도 있다.
이 시장은 “나도 시민이다. 36만 시민의 의견을 어떻게 다 들을 수 있느냐”며 “진주대첩기념광장은 다 비우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어느 누가 와도 안 된다. 억지를 부리지 말라”고 반박했다.
진주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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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평운동 1923년 경남 진주에서 시작한 백정(白丁)들의 신분해방운동으로, 한국 근대의 대표적인 인권·사회운동이다. 1894년 갑오개혁으로 신분 차별이 법적으로 폐지됐으나 실제로는 백정 차별이 유지됐다. 이에 진주의 백정뿐 아니라 신현수·강상호 등 양반들도 참여해 형평사(衡平運動)를 설립했다. 설립 1년 만에 전국에 지사 12개, 분사 67개가 설립됐다. 형평사는 ‘저울(衡)처럼 평등(平)한 사회를 지향하는 단체(社)’란 뜻이다. 1930년대 일제의 탄압으로 해산됐다.
2016-04-19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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