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재계와 한나라당에서는 이 제도를 폐지하든가 완화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반면 민주노동당과 시민단체에서는 더욱 강화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 중간쯤 되는 정부 여당안이 협공을 받고 있는 셈이다.
공정거래법안이 국회를 통과함으로써 오는 4월 1일부터 자산규모 5조원 이상 기업집단 소속 회사는 순자산의 25%를 초과해 다른 회사 주식을 취득 또는 소유할 수 없도록 한 출자총액제한 규제를 받게 된다. 사실은 골격이 현행대로 유지되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15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지난해 12월 15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투명경영을 다짐하는 결의문을 낭독하는 경제 단체장들. 왼쪽부터 김용구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회장, 강신호 전경련 회장, 박용성 상의 회장, 이수영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서울신문 포토라이브러리 |
한 기업이 회사 자금으로 다른 회사의 주식을 매입해 보유할 수 있는 총액을 제한하는 제도를 말한다. 출자총액에 제한을 가하지 않으면 한 대기업이 자본금이나 부채로 다른 기업의 주식을 사들여 지배권을 갖게 된다. 실제로 현재 국내 재벌 총수들은 평균 2%도 안되는 지분으로 수십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기업집단의 수를 확대해 거대한 재벌이 될 수 있지만 폐단도 많다. 즉, 기존 업체의 재무구조가 악화되고 출자와 재출자를 통해 대재벌이 작은 기업들을 지배, 경제력이 집중된다는 것이다. 이른바 외환위기의 한 원인이 된 문어발식, 선단식 확장이다.
이에 정부는 자산 규모 기준으로 5조원이 넘는 기업집단은 자산의 25%까지만 다른 기업에 출자할 수 있도록 제한하고 있다.
●출자총액제한의 연혁과 배경
1995년 4월 1일 이전까지 출자총액 제한은 순자산의 40%로 지금보다 기준이 낮았다. 그 뒤 3년간의 유예기간을 두고 1998년 3월말까지 25% 수준으로 낮추게 했다.
그러나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2월 철폐했다. 폐지한 이유는 외국기업의 국내기업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M&A)을 방어하고 외국기업과의 역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 결과 대규모기업집단의 동일인이 적은 지분으로 많은 계열사를 지배하고, 일부 계열사의 부실이 전체 기업집단의 동반 부실을 초래하게 됐다.
그래서 다시 2001년 4월 1일부터 순자산의 25%를 초과하여 다른 회사의 주식을 취득하는 것을 금지했고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출자총액제한제는 필요하고 강화해야 한다.”
이 제도를 오히려 강화해야 한다는 측의 주장은 이렇다. 이 제도는 재벌의 경제적 폐단을 치유하기 위한 수단이다. 실제로 98년 제도 폐지 이후 재벌 기업들의 출자 비율이 급증했다. 순환출자로 문어발식 다각화가 심화됐다. 출자를 제한하면 투자를 저해한다는데 그렇지 않다.
오히려 출자를 허용하면 신규 투자를 방해할 가능성도 있다. 즉, 기업이 투자금으로 경영권을 확보하기 위해 계열사 주식을 산다면 투자를 위한 재원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재벌들이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목적은 회사 돈으로 총수의 경영권을 지키기 위함이다. 그것은 재벌의 경영 행태 때문이다. 독단 경영과 세습 경영은 재벌의 가장 큰 폐단이다. 부채로 기업 확장을 하면 기업의 재무구조는 취약해진다. 장기적으로 이 제도가 폐지되려면 재벌의 지배구조가 투명해져야 한다.
●“출자총액제한제는 폐지해야 한다”
다음은 폐지론자들의 주장이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경제력 집중 억제정책을 시행하는 나라다. 출자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다.
기업의 분사와 새로운 법인의 설립, 이에 대한 출자도 어렵게 하고 있다.99개 기업의 건전한 성장을 막더라도 한 기업의 잘못된 행태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식의 규제이다. 대기업의 출자를 금지해 사실상 대기업간의 경쟁을 가로막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재벌 규제를 금융 및 자본시장 감독기구에 맡기고 경쟁정책에 집중하도록 계속 권고하고 있다. 투명성과 기업지배구조의 개선은 기업의 자율적인 노력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공정위의 입장
공정위는 출자총액제한 제도가 대기업의 투자를 가로막는다는 재계 주장이 근거없는 엄살이라고 지적한다. 이 제도는 기업이 다른 회사 주식을 소유하는 것만을 제한하는 것이지 기업의 투자나 경영활동과는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은 최근 한 강연에서 “출자총액제한 제도가 폐지되면 지배주주가 적은 지분으로 거미줄식 순환출자를 통해 부당하게 많은 계열사를 지배하는 폐해가 더욱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공정위는 신산업 분야 등에 대한 출자는 총액제한에서 예외로 인정해주기 때문에 출자총액제한 때문에 투자를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주장했다.
이 제도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게 아니라고 공정위는 지적한다. 공정위 관계자는 “우리와 같은 재벌 문제가 없는 일본도 최근까지도 주식보유총액제한제도를 운용하는 등 경제력 집중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손성진기자 sonsj@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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